|
주필호(48) 주피터필름 대표는 최근 영화계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영화 홍보사에서 영화 제작사로 변신해 ‘관상’으로 900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에 성공한 게 첫 번째 놀라움이고, 그 흥행 수익의 50%를 선뜻 기부한 게 두 번째 놀라움이다. 현재 영화 흥행 성적과 지분 계약 조건을 감안하면 기부 액수만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계약서 문구 한 글자뿐 아니라 시간 약속 1분마저 깐깐하게 지키는 그의 모습을 봤던 영화인들은 그의 통 큰 결단에 깜짝 놀랐다. 막 성공가도에 접어든 영화 제작사 대표가 대기업 사장도 내놓기 어려운 액수를 선뜻 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부한다는 표현보다는 ‘나눔’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온전히 제 것을 누구에게 주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 저라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스태프의 도움으로, 관객의 사랑을 얻은 수익이니 우리 국민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생에서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다 ‘나눔’의 의미를 깨닫게 됐죠.”
주필호 대표는 ‘관상’ 촬영이 막 시작된 지난해 늦가을, 서울 종로구 누하동 사무실 인근에 터잡은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했다. 이미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등 내로라하는 스타급 배우의 출연이 확정된 터라 적지 않은 수익을 기대되던 때였다. 아름다운재단 측은 “일단 개봉한 후 기부액수를 정하는 게 어떠냐”고 했으나 주 대표는 “사람 마음이라는 게 변할 수 있으니 먼저 서약서를 쓰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주필호 대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주말의 명화’ 등 TV 영화에서 접한 할리우드 배우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면서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됐다. 운명적으로 중앙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해 연출을 배우게 됐다.1994년 영화마케팅 전문업체 ‘영화방’을 만든 후 영화 ‘친구’의 흥행에 일조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수백편의 영화 마케팅에 참여한 힘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사 ‘주피터필름’을 설립했고,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두 개의 달’에 이어 ‘관상’으로 제작자로서 명성도 쌓게 됐다.
주필호 대표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이로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 고 김윤심 여사를 떠올렸다. 영화계에 뛰어들었을 때 날마다 용기를 주는 응원군이었고, 제작사가 어려울 때마다 금전적 지원을 한 후원자였다. 무엇보다 ‘비우는 인생’을 살라고 알려준 이도 어머니였다. 주필호 대표는 “‘관상’ 촬영 때 그렇게 즐거워했던 분이 흥행하는 것으로 보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 아쉬워요”라면서 “먼발치에서나마 더불어 함께하는 아들의 모습을 더 보여드릴 싶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