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이날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낭독했다. 그는 소설 ‘채식주의자’(창비)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쓰면서 마주했던 생각들과 자신의 문학을 이루고 있는 내밀한 질문들을 청중과 나눴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째서 세계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공존하는가. 한강은 이 질문이 오랫동안 그의 글쓰기를 이끌어 온 힘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믿음이 흔들렸다”고도 했다. “내 모든 질문은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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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연설은 1979년 여덟 살 때 쓴 시(詩)를 우연히 발견한 일화에서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가 나왔다”며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14년이 흘러 22살이 되던 해 그는 “쓰는 사람”이 됐고, 5년 뒤에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문학동네)을 발표했다.
한강은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 안에 살면서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회고했다. 그는 인간의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새 작품으로 나아갔다.
그의 질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년이 온다’(2014)를 집필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한강은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뒤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며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광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긴 역사를 두고 자행됐던 학살의 기록을 샅샅이 살폈다.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이렇게 탄생했다. 노벨위원회가 1순위로 꼽은 작품은 역사의 한 가운데 선 개인의 고통과 내면을 섬세하게 그렸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자신을 ‘쓰는 사람’으로 명명한 한강 작가는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말미에 한강은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면서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끝맺음했다.
강연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표가 매진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청중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지면서 한강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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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절묘할 수 있을까. 지난 3일 밤 한국에서 전격 발표된 계엄령은 한강의 31년간 이어온 작품 속 주제와 연결된다. 작가의 문학은 늘 억압과 폭력, 그리고 그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주제 중심에 있다.
김 평론가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가 기록한 한국의 현대사는 세계문명사에 영원히 기록됐다”면서 “인류 전체의 기억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없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이 가진 힘을 두려워할 만큼의 성숙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노벨 주간(12월 6~12일) 동안 이어지는 다채로운 행사에 참석한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10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편 지난 6일 회견이 열린 노벨박물관 앞에선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위자는 “윤석열을 내란죄로 체포하자”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들었고 노벨상을 취재하러 온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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