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국제 정세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서 경제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홍 부총리의 그간 소회에 대해 “장거리 마라톤 경기를 뛴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제 현안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면 100m 달리기를 하는 식으로 긴장감 속에 절박한 심정으로 정책을 펼쳤다”고 회상했다.
포용성장 위협한 코로나19 사태, 전장에 서다
홍 부총리의 의지는 재임 기간 언급했던 성어(成語)를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취임사·신년사 등 공식적인 연설문과 확대간부회의(확간) 등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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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취임 당시 밝힌 취임사에서는 ‘거문고의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매다’라는 뜻의 성어인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인용했다. 당시 포용 성장을 확대하며 경제 활력을 도모하자는 정부 취지에 맞춰 긴장을 높여 심기일전하는 동시에 제도 개혁의 의지를 다진 발언이었다.
홍 부총리는 이듬해 9월 확간에서도 해현경장을 재언급하는 등 임기 초기 재정비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을 맞아 내놓은 신년사에선 ‘사변독행(思辨篤行·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히 변별하며 성실하게 실행하라)’을 통해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했고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의미의 ‘연비어약(鳶飛魚躍)’을 제시하며 우리 경제 현안 해결과 도약을 바랐다.
하지만 2020년초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 경제에는 비상등이 울렸다. 홍 부총리는 비상 경제체계가 구성되던 2월 확간에서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를 언급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자’며 한 말로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강구해 위기를 벗어나자는 의미다.
같은해 3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는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의 ‘교토삼굴(狡兎三窟)’을 인용하면서 빠른 경제 회복의 의지를 나타냈다. 코로나19 사태 진정 후 소비·투자의 확대 대책을 미리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리를 가고 이제 절반이 왔다고 여긴다’는 의미의 ‘행백리자 반구십(行百里者 半九十)’을 인용한 그는 마지막까지 코로나19 대책이 차질 없이 마무리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1년 정도면 마무리될 것 같아 보이던 코로나19가 재확산을 반복하면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계속됐다.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던 2020년말 홍 부총리는 신년사를 통해 “‘죽은 뒤에나 멈춘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의 새해 출사표 심정으로 진력하겠다”며 심기일전하는 자세를 보였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풍신연등·風迅鳶騰)’는 바람과 함께 담아서 말이다.
“그침을 안다…결과 연연치 않고 담백하게”
지난해초 코로나19 엄중함이 다시 커지면서 정부 대책이 긴요해지자 홍 부총리는 1월 열린 뉴딜 당정 추진본부에 참석해 “창을 베게 삼고 갑옷을 입고 잔다”며 ‘침과침갑(枕戈寢甲)’의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자 전장에 나선 장수의 마음가짐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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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는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2월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더불어민주당측 주장에 홍 부총리가 강하게 반발하던 때다. 당시 이낙연 당대표가 선별+보편 지원을 제안하자 홍 부총리는 “국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곳간지기로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후 정치권의 공세가 지속됐지만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서 “늘 가슴에 ‘지지지지(知止止止)’의 심정을 담고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침을 알아 그칠 데 그친다’는 뜻으로 결과에 연연치 않고 담백하게 나아가겠다는 홍 부총리의 심경을 대변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말로 향하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유독 여러번 나왔다. 취임 1000일을 맞았던 지난해 9월 4일 기자실을 찾은 홍 부총리는 “공직 36년째인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공직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 국민을 위해 쉼없이 달려가는 것 외엔 좌고우면이 없다”고 밝혔다.
대선 정국에 들어갔던 지난해 12월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도 “내년 선거에 따라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단 한 치의 좌고우면 없이 목표를 향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문 정부 마지막 경제부총리로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정치권 관심·공세 뒤로 하고 국민 중심 정책 노력
지난해 12월에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보편 지원 공세가 이어졌던 때다. 이 후보는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자린고비임을 인증한다”며 홍 부총리를 저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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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에서 ‘진중한 무게중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여후석 풍불능이 지자의중 훼예불경(譬如厚石 風不能移 智者意重 毁譽 不傾)’, 즉 ‘두텁기가 큰 바위는 바람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듯 진중한 자의 뜻은 사소한 지적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며 외부 대응 없이 위기 극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22년을 맞아 홍 부총리가 신년사로 던진 메시지는 ‘국민’이었다. 그는 ‘백성 마음에 어긋남이 있는지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의 ‘외민심(畏民心)’을 언급하며 “정책을 펼칠 때 오직 국가·국민을 북극성으로 하고 나아가겠다”고 술회했다.
경제 위기 극복이 최대 성과이자 난제였던 재임 기간 부동산 문제 등 정책의 실기(失期)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위기 속 홍 부총리가 던진 메시지는 간결하고 정확했다. 외풍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력해나가는 것, 그가 지키려던 공무원의 자세이기도 했다.
한편 홍 부총리는 9일 세종청사에서 이임식을 열고 공직에서 물러난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그는 “공직생활 37년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한국 경제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