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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좁혀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낯선 남자들이 허 양의 집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금품을 노린 강도 행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허 양네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워서 생계를 잇는 정도였다. 실제로 당일 도난 당한 물품도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허 양의 할아버지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기 진행됐다. 그런데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수사가 갈피를 못 잡고 2주가 지난 새 허 양이 돌아왔다.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야산 등성이에 암매장된 채였다. 주변 지형(야산)을 이용한 걸 보면 동네 주민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경찰은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고 전국에 몽타주를 뿌렸다.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목격자가 유일한 게 컸다. 허 양의 동생도 물론이고 동네 사람 가운데 괴한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진술은 여전히 신빙성이 떨어졌다. 범인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를 반복했다. 시골 마을에는 CCTV도 없었다.
급기야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도 몰랐다. 면식범의 소행이라면 할아버지의 진술이 구체적일 법한데 그렇지 않고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외려 할아버지가 켕기는 사실이 있어서 말을 바꾸는 건 아닌지 하는 시선도 뒤따랐다.
허 양의 할아버지는 그해 8월21일 숨을 거뒀다. 지병인 폐렴이 악화한 탓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84일 만이었는데 수사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목격자가 사라지면서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건은 이제껏 미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