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모어 "저희는 낯설거나 이상하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에요"

제도권 얽매이지 않는 2명의 '독보적' 예술가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3' 첫 합동 공연
시 낭독·노래·무용 어우러진 이색 공연 선봬
이랑 "예술은 고단한 사람 위로해주는 것"
모어 "예술은 아름다움…절망 속 희망 전할 것"
  • 등록 2023-05-29 오전 5:52:00

    수정 2023-05-30 오전 8:53: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제도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예술 분야를 종횡무진해온 2명의 예술가가 한국 공연예술의 중심지 세종문화회관에 오른다. 이랑(37), 그리고 모어(모지민·45)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세종문화회관 여름 시즌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 23’에서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오는 8월 8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3’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한 이랑(오른쪽), 모어. 두 사람은 오는 8월 8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공연한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싱크 넥스트 23’ 프로그램 중 빠른 티켓 판매 속도를 보이며 매진이 임박한 상황이다. 집회 현장과 공연장을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러온 이랑, 그리고 이태원 지하클럽에서 춤을 춰온 모어에게도 이번 공연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런 큰 공연장에서 함께 공연하게 되니 감개무량하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랑에게는 싱어송라이터·작가·영화감독, 모어에게는 드랙(Drag,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 아티스트·안무가·배우·작가·화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둘에게 중요하지 않다. 각자 삶에서 느낀 감정과 고민을 노래와 글, 영상과 춤으로 표현하며 한국 사회에 다양한 질문을 던져왔다. ‘독보적’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이랑은 2021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로 이듬해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다. 앨범과 같은 제목의 타이틀 곡은 한국 사회의 가난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은 가사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했다. 모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폭언과 폭력에 좌절한 뒤 고통을 견뎌내며 드랙 아티스트로 살아왔다. 예명인 모어(毛魚)는 ‘털 난 물고기’라는 뜻. 세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모어’, 그리고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9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모어’ 상영회 현장. 왼쪽부터 이랑, 모어,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사진=모지웅)
이번 공연 제목은 두 사람이 지난해 9월 함께 참여한 다큐멘터리 ‘모어’ 국회 상영회가 계기가 됐다. 당시 국회의원 전원에게 상영회 초청장을 보냈지만, 행사 사회를 맡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모어가 즉흥으로 읊은 시의 한 구절이 공연 제목이 됐다.

“장혜영 의원이 국회에 오면 모든 말이 기록된다고 하더라고요.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대체 언제까지 나의 존재를 부정할 것인가. 나는 낯설거나 이상하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너의 옆집에 사는 사람일 뿐이다.’”(모어)

“차별금지법과 성 소수자의 인권 이야기를 그 당사자가 하는 자리였는데, 국회의원이 아무도 안 와서 슬펐어요. 그런데 모어가 즉흥적으로 읊은 시가 너무 강렬했죠.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말이라고 생각했어요.”(이랑)

이번 공연은 시 낭독과 노래, 무용 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 화려한 퍼포먼스가 예상되지만, 두 사람은 “매우 정적인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랑은 “사람들이 저는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아티스트, 모어는 진한 화장을 한 드랙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그 이면엔 혼자 외롭게 일상과 싸우는 모습이 있다”며 “다른 이들처럼 연약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우리 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0년 전인 2013년 홍대 공연장 롤링홀이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모어에 끌린 이랑이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모어는 이랑이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서서히 마음을 열고 둘도 없는 예술적 동지가 됐다. 이랑과 모어는 그동안 함께 창작 작업을 한 적은 있지만, 함께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은 위로이자 아름다움의 예술로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예술은 고단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하는 것 또한 고단한 일이지만, 저의 고단함이 다른 이의 고단함을 씻어준다는 것이 좋아요.”(이랑)

“지난해 영화 ‘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욕창의 구더기 같은 삶을 살았어요. 지금부터는 삶을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게 살려고 해요. 절망의 끝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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