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한동훈과 공공의 적

  • 등록 2023-04-14 오전 5:00:00

    수정 2023-04-14 오전 5:00:00

2002년 개봉돼 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은 한국 영화 ‘공공의 적’만큼 형사 시리즈물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부쩍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치른 공공의 적(Public Enemy)용어가 1920년대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술의 제조·판매·운송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가 서슬퍼렇던 1920~1932년, 미국 사회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은행 강도, 밀주업자들 중 특히 악명이 높은 범죄자를 FBI가 ‘공공의 적’으로 부른 것이 시초가 됐다는 것이다. 마피아와 갱들이 날뛴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다룬 누아르 영화와 소설 등이 앞다퉈 쏟아진 것도 용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높인 원인이 됐다. 그러나 본래 뜻은 좋을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자나 민폐를 안기는 독버섯 같은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이어서다.

‘공공의 적’ 용어를 글머리에 끌고 나온 이유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퍼붓는 ‘말폭탄’ 세례 때문이다. 한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의 말싸움이 본격화된 것은 장관 인사청문회 때부터지만 1년이 다 된 지금도 공방의 불씨는 여전하다. 반듯하지만 차갑고 까칠해 보이는 한 장관을 상대로 링에 오르는 민주당 의원들의 열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강욱 김남국 김의겸 황운하 고민정 김승원 김회재 정청래 이수진 권인숙… 한 장관에게 말 펀치를 내민 의원 숫자만 해도 열 손가락을 족히 넘는다. 성별과 선수(選數)를 가리지 않고 면면도 다양하다. ‘질의’라는 포장으로 날린 펀치의 내용 또한 다채롭다. 하나하나 좁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렵다.

하지만 펀치의 각도와 세기가 달랐을지언정 한 장관을 상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표정과 말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적개심과 분노, 그리고 반드시 넘어뜨리고 말겠다는 투지다. 탄탄한 논리와 막힘없는 반사적 화법으로 공격을 피해가는 한 장관을 꼼짝달짝 못하게 만들고, 망신주겠다는 목표 아래 생긴 감정들이다. 답변이 궁색하기는커녕 또박또박 역공을 펼치는 한 장관을 잡으려다 보니 말과 감정은 거칠어지고 스텝은 망가지고 있다. 치졸하고 저열한 언어 표현으로 자신들 얼굴에 상처를 내기 일쑤다. “아주까리 기름 먹느냐”(정청래) “조선 제일의 혀”(김의겸) “미운 7살 모습” 등 수준 이하의 말 공격이 의정 단상과 방송 마이크 앞에서 여과없이 쏟아지고 있다. 콧대 높은 금배지들이 헛발질과 헛소리로 당과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격이다.

공공의 적 앞에서 연전연패한 의원들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내년 4월 총선에서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막말과 상습적 거짓말, 잡아떼기와 무지를 두려워 않는 몰염치 등이 얼마나 한국 정치를 저질 코미디로 전락시키고 혐오감을 부추겼는지를 이들은 먼저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장관과 야당 의원의 말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그의 호전적 답변 태도와 처신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상당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법치의 파수꾼 역할에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다. “정치할 것이 분명하다”는 관측이 야권에 무성하지만 그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정의와 상식을 비웃고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인들의 민낯을 더 소상하게 까발리고 알리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혀와 머리와 가슴이 망가지는 사례를 국민은 수없이 목격했다. 마약이 주택가와 학교 코밑까지 파고들고, 전세사기범에 물린 서민들이 엄동설한에 길 한복판으로 내쫓긴 일이 잇따라도 정치인들의 나라 걱정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이런 이들과 한 장관이 한데 섞여 삿대질을 벌인다면 나라에도 큰 손실이다. 한 장관은 민주당의 공공의 적으로 계속 남아 법치를 위협하는 ‘진짜 공공의 적’을 뿌리뽑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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