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조롱’ 팬덤 정치가 불러온 민주당의 위기[팬덤의 딜레마]①

  • 등록 2022-06-13 오전 6:00:00

    수정 2022-06-13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소수 강성 당원들의 언어폭력에 굴복하는 정당이 아니라 말 없는 국민 다수의 소리에 응답하는 대중 정당을 기대한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참패로 막을 내린 6·1 지방선거 이튿날 사퇴의 변에서 “당권과 공천에 맞추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상식에 맞추는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강조한 말이다.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 백가쟁명식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입을 모아 반성과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쇄신 과제 1순위로 꼽히는 `팬덤 정치`에 대한 고민은 뒷전인 양상이다.

윤호중·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총사퇴를 밝히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건설적 참여 넘어 극단·폭력적 활동 변질

대선 이후 `개딸`(개혁의 딸·대선 후 이재명 의원 지지 2030 여성)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은 참여 민주주의 강화 등 건설적 활동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책에 반대하면 `문자 폭탄`은 기본이고 `18원 후원금` 같은 조롱이나 지역 사무소 `테러` 등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그릇된 팬심`이 정치권에서 `협상파는 소외시키고 강경파만 살아남는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장 탈당` 등 온갖 꼼수를 동원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여 경쟁을 촉발하고, 나아가 정치 문화 자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면서도 “진영 대결 구도가 극대화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민주적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됐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 교수는 “과거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갈등 때에도 같은 진영에 대한 동지 의식은 있었다”면서 “특정 개인 지지 외엔 적으로 간주하는 강한 팬덤 현상의 역설”이라고 평가했다. 한상원 충북대 교수가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의 개념을 인용한 것을 빌자면, 현재의 팬덤 정치에는 `정당한 적`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부당한 적`만 존재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이상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창조적 파괴` 대상으로 `못된 것`, `그릇된 것`, `볼썽사나운 것`을 지목한 뒤, “패거리, 맹종, 금기와 성역, 팬덤 편승, 내로남불, 오만 독주 등을 부숴 날려버려야 혁신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난해 보궐선거부터 세 번 연거푸 진 것도 강성 팬덤 영향을 받은 탓”이라면서 “강성 팬덤이 있는 게 한편 자산일 수 있지만 거기에 끌려다녀서는 망하는 길”이라고 일갈했다. 급기야 이재명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에 기초한 토론과 비판 설득을 넘어,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모욕적 언사, 문자폭탄 같은 억압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과격 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다.

계파 간 갈등에 `룰 전쟁` 전운도

그릇된 팬덤 현상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수박`, `정치 훌리건` 등 계파 간 갈등을 고조시키고 `룰의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에는 지도부를 뽑을 때 대의원 투표 45%, 권리당원 투표 40%, 여론조사(일반 당원 5%, 일반 국민 10%)를 합산해 선출하고 있다. 당권 도전이 유력한 이재명 의원 측 의원들은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권리당원 투표 비중 확대와 신규 당원 투표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친문계는 사실상 대선 전후 입당한 친이재명계 당원들을 염두에 둔 거라며 규칙을 개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혁신은 우리 당을 더이상 지지하지 않는 70%의 국민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데서 시작된다”면서 “30%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폐쇄형 선출방식에서 국민 100%의 목소리를 듣는 개방형 선출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덤 정치 한계를 벗어나려면 국민 목소리를 직접 반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최병천 한국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민주당이 `정치적 장기불황`의 초입 국면에 있다”는 진단까지 내놓았다. 팬덤에 갇혀 혁신의 가치와 방향을 실종한 채, 노선 경쟁 대신 계파 싸움·권력 투쟁에 몰두한다면 더 큰 위기와 혼란은 불가피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논란을 빚는 팬덤 현상은 `고립된 숙의`를 한층 가속화 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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