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비호감 대통령, 밉상 영부인

  • 등록 2022-02-11 오전 5:00:00

    수정 2022-02-11 오전 9:18:39

육영수 여사 (사진=육영수여사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박 대통령은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영구차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한 바퀴 돈 뒤 영정 앞에 다시 서서 또 한 번 잠시 묵념을 올렸다. 영구차가 청와대 정문을 나갈 때 뒤를 잠시 따라가다 차가 멈추자 다시 흐느꼈다. 영구차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주시하다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돌아서서 정문 옆 벚꽃 나무에 기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고인의 육성이 방송될 때 조객들은 글썽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청 영결식장에서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르는 연도에는 서울 시민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2백여만 명(경찰 추산)의 시민·학생들이 나와 무더위 속에서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오전 11시 40분 영결식장을 나선 운구 행렬이 서울 시청 앞 광장까지 가는 동안 연도의 시민들은 허리 굽혀 절을 올렸다”

정부 수립 후 프란체스카 여사에서 김정숙 여사에 이르기까지 10명 넘는 여성이 청와대 안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 중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쓰러진 육영수 여사 만큼 국민 가슴에 애틋하면서도 또렷한 기억을 남긴 이는 없을 듯하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영부인으로서 여사가 보여준 품격과 언행, 그리고 발자취에 시비를 걸 이는 많지 않을 것 같아서다. 남편인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들도 청와대 야당을 자처한 여사의 올곧고도 따스한 인품 앞에서는 다소나마 화를 삭였을지 모른다.

필자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한 배경은 여사의 몸에 밴 겸손과 검약, 그리고 그늘지고 소외된 곳의 약자를 찾아 함께 나눈 사랑과 정성이 싹틔운 범국민적 존경에 있다. 고교생 시절인 48년 전 8월 19일 장례식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시절 신문 기사와 흑백TV 속 중계 화면을 과거 앨범 속에서 되살려낸 것은 여사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사랑이 의례적 찬사 수준의 것이 아니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대선이 2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여야의 혈투는 나라를 원색적인 비난과 흑색선전으로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역대 최고의 ‘비호감’ 평가를 받는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부인 후보를 둘러싼 공방이 어느 때보다 뜨겁고 추문과 의혹이 끊이지 않는 데 있다. 싸움의 판세가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대결로 굳어졌듯 영부인 후보를 겨냥한 논란도 김혜경(이재명)김건희(윤석열)두 사람의 문제로 좁혀졌다. 김혜경씨의 경우 봇물처럼 쏟아진 갑질과 왕비 의전, 국고 손실 등의 혐의가 비리 의혹의 초점이다. 잠잠해지긴 했지만 김건희씨도 사업 및 학·경력 위조 등과 관련된 잡음이 꼬리를 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대다수 국민은 마음을 열기 어렵다.

누가 청와대로 들어가느냐를 떠나 두 사람은 그동안의 반칙과 불법에 대해 국민 앞에 한없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을 영부인으로 인정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다. 과거 잘못을 이제 와 바로잡을 순 없지만 이들을 향해 날아든 비난과 원성, 조롱은 앞으로도 대통령을 흔들 큰 역풍이 될 수 있다. 청와대 5년 내내 더 신중한 몸가짐과 말조심이 필요한 이유다.

시대가 요구하는 영부인의 덕목과 자격이 옛날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낮은 자세로 국민에 다가가고 음지에서 더 큰 사랑을 베푸는 영부인의 손길은 대통령의 허물을 덜고 국민을 끌어안는 힘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정치는 처참한 것과 밥맛 없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대신 ‘영부인’의 세 글자를 써넣는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현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의 씁쓸한 심정을 두 사람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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