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 현대차의 변신, 소비자의 변심

  • 등록 2023-05-12 오전 5:00:00

    수정 2023-05-12 오전 5:00:00

“큰일났어요. 도쿄 모터쇼에 본사 고위 임원이 와서 연설을 하기로 돼 있는데 개막을 코앞에 두고 더 높은 분이 가지 말라고 해 못 오게 됐다니 어떤 이유를 둘러대야 할지요. 행사 일정은 오래전에 다 짜인 건데 정말 난감합니다”

“아···S 대표님이요? 갑자기 귀국 발령이 나서 본사로 들어가셨습니다. 원인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묻지 말아주십시오”

200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의 일본 시장 도전 의지는 굳세고 뜨거웠다. 회사 위상과 브랜드 홍보를 위한 행사와 기자 회견이 수시로 열렸고 한일 공동 주최 월드컵 축구대회(2002년)에는 그랜저가 공식 차량으로 대거 투입돼 일본 소비자들의 귀와 눈을 붙잡았다. 하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연간 수만대를 팔겠다던 판매 전선엔 냉기가 가득했고 도쿄 시내를 굴러다니는 현대차를 목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재원들의 얼굴이 갈수록 어두워지더니 법인장 문책과 사무실의 외곽 축소 이전 이야기가 취재 안테나에 잡혔다. 급기야는 국제 행사의 연설 펑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하소연까지 한 주재원으로부터 듣게 됐다. 현대차가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일본 시장에서 받은 냉대와 고위층의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랬던 현대차의 대변신을 알리는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올 1분기 37조 7787억원의 매출로 전년 동기 대비 24.7%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영업이익은 3조 5927억원으로 86.3%나 늘렸다는 이 회사의 실적은 눈부시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불황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한 가운데 올린 독보적 성적이다. 반도체 수출이 반토막난 상황에서 수출 전선을 홀로 떠받쳤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쾌속 질주를 이끈 차종도 전기차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네시스, SUV 등 시장 트렌드를 리드하는 고부가가치 모델들이어서 값지다. 미국 시장 진출 초기였던 1980년대 중반, 형편없는 싸구려 브랜드로 조롱받았던 씁쓸한 기억과 비교하면 2022년(아이오닉 5)에 이어 2023년(아이오닉 6)연속 ‘세계 올해의 자동차 상’을 받은 것은 환골탈태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외부의 찬사가 쏟아지면서 글로벌 완성차 1위인 일본의 토요타 추월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군 지프를 개조해 만든 차로 시작한 한국 자동차산업이 불과 70여년 만에 반도체에 이어 또 하나의 신화를 쓰게 된 셈이다.

고백하자면 기자가 현대차의 밝은 미래를 반신반의했던 이유의 큰 줄기는 ‘툭하면’ 발목을 잡는 강성 노조와 고위층의 예측 불가능한 제왕적 리더십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모습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세계 자동차업계가 “위기 때마다 글로벌 위상이 격상되는 회사”라고 현대차의 변신을 추켜세우고 정의선 회장을 “업계 전체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뿌듯함마저 느낄 정도다.

하지만 진검 승부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기아차를 포함, 2016년 약 180만대까지 올라갔던 중국 시장 판매량이 올해 30만 6000대(목표)수준까지 추락한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재도전에 나선 일본 시장의 월평균 판매량이 아직 미미한 것도 불안하다. 최인접국 시장을 제대로 회복, 공략하지 못한다면 지구촌 다른 곳에서 쌓은 금자탑도 빛을 잃을 게 뻔해서다.

‘변신’이라는 토양에서 더 큰 수확을 거두려면 현대차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더 정확히 읽고 유혹의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된다. 변심을 이끌 확실한 미끼를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시장의 철문이 활짝 열릴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일본에선 토요타 등 토종 메이커들의 견제와 반격이 거세질 것이 분명한 지금 현대차는 진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더 큰 점프냐, 역주행이냐를 가를 기로다. 과거와 다른 점 하나는 현대차의 대응에 한국경제의 내일도 달려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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