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언니들의 귀환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헨리 8세 여섯 아내의 이야기
센터 자리 놓고 한풀이 배틀
걸그룹 방불케하는 팝 무대
히스토리 아닌 허스토리 방점
  • 등록 2023-05-29 오전 6:30:00

    수정 2023-05-29 오전 7:39:52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의 한 장면(사진=아이엠컬처 제공).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언니가 돌아왔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한 시대를 호령했던 언니들이 왔다. 여섯 명의 영국 왕비들의 콘서트, 바로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이하 ‘식스’)이다. 짚고 넘어갈 건, 여기서 ‘왕비’라는 표현이 은유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라는 점이다. 뮤지컬 ‘식스’의 주인공은 헨리 8세의 부인이었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앤 불린, 제인 시모어, 클레페의 앤, 캐서린 하워드, 그리고 캐서린 파다.

헨리 8세는 재위 기간에 무려 7만2000명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폭군인 동시에, 로마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혁명가라는 양단의 평가를 받는 인물. 그에게 따르는 또 하나의 닉네임은 ‘욕정의 화신’이다. 그에게는 여섯 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파국을 맞은 부부들의 끝이 대개 그러하듯, 끝이 좋은 왕비는 거의 없다. 말년에 부부의 연을 맺은 캐서린 파가 유일하달까. 이전의 왕비들은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등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뮤지컬은 다시 모인 여섯 왕비가 ‘센터’ 자리를 두고 벌이는 배틀 형식을 띤다. 아이돌그룹의 센터 경쟁을 연상시키는 이 대결의 기준은 ‘누가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노래한다.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하게 된 사연,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참수당한 사연, 아이를 출산하다 산욕열로 사망한 사연, 외모로 인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이혼당한 사연, 남편의 바람기에 바람으로 응수하다 참수된 사연 등등.

각자의 흥미(?)로운 사연만큼이나, 각자 추구하는 음악적 스타일도 다양하다. 아라곤은 비욘세와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허드슨, 앤 불린은 에이브릴 라빈과 마일리 사이러스, 시모어는 아델과 시아, 셀린 디옹, 클레페의 앤은 리한나와 니키 미나즈, 캐서린 하워드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리고 캐서린 파는 앨리샤 키스와 에밀리 산데의 음악적 스타일과 비슷하다. 익숙한 스타일은 흥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익숙한 리듬에 더해 뮤지컬은 지금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번역을 선보인다. 앤 불린의 넘버 ‘Don’t Lose Your Head’가 대표적인데, 앤 불린이 ‘남자들은 개폭망’, ‘개쩌는 주말이었어’, ‘캐서린은 개쩌는’이라고 노래할 때면 객석의 열기가 달아오른다. 외에도 ‘악플 쩔더라’, ‘반응 어쩔’ 등 ‘식스’에는 500년전, 튜더 왕가의 언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신조어가 톡톡 등장한다. 물론 원가사의 의미와 라임을 살리려 한 대목도 눈에 띈다. 특히 대표 넘버 ‘SIX’의 라임이 대표적이다. 원 가사의 ‘one, two, three, for(four), five, six’는 ‘우릴(1) 하나로 묶을 순 없어, 잊(2)혀졌던 우리의 역사, 내 삶(3) 영광 이제 되찾아, 자(4), 5분 동안. 우린 SIX’로 번역되었는데,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번역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아이돌에게 음악적 스타일만큼 중요한 게 있다면, 외적인 스타일일 듯. 여섯 왕비는 저마다 다른 색상의 의상으로 개성을 드러내는데, 의상 하나하나에도 그들만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공국 왕족 출신의 아라곤은 가문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금빛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앤 불린은 초록 계열의 의상을 입는데, 이는 영국민요 그린 슬리브스를 모티프로 한다. 항간에는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구애할 때 불렀다는 설이 있다. 시모어의 화이트앤블랙은 굳건한 사랑, 클레페의 앤의 레드는 열정적이고 주도적 삶을 의미한다.

다양성은 캐스팅에서도 발견된다. 대극장 주연배우와 K-팝 가수, 앙상블, 대학로 배우 등 제작진은 다양한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 한편 여성들이 주인공인 만큼 ‘식스’는 밴드 역시 여성으로만 구성했는데, 보이지 않는 스태프 역시 모두 여성이란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 연출 제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경쟁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해묵은 주제의 반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방점은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story) 여기에 있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의 한 장면(사진=아이엠컬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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