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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는 재위 기간에 무려 7만2000명을 살해한 잔인무도한 폭군인 동시에, 로마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혁명가라는 양단의 평가를 받는 인물. 그에게 따르는 또 하나의 닉네임은 ‘욕정의 화신’이다. 그에게는 여섯 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파국을 맞은 부부들의 끝이 대개 그러하듯, 끝이 좋은 왕비는 거의 없다. 말년에 부부의 연을 맺은 캐서린 파가 유일하달까. 이전의 왕비들은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등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뮤지컬은 다시 모인 여섯 왕비가 ‘센터’ 자리를 두고 벌이는 배틀 형식을 띤다. 아이돌그룹의 센터 경쟁을 연상시키는 이 대결의 기준은 ‘누가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노래한다.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하게 된 사연,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참수당한 사연, 아이를 출산하다 산욕열로 사망한 사연, 외모로 인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이혼당한 사연, 남편의 바람기에 바람으로 응수하다 참수된 사연 등등.
익숙한 리듬에 더해 뮤지컬은 지금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번역을 선보인다. 앤 불린의 넘버 ‘Don’t Lose Your Head’가 대표적인데, 앤 불린이 ‘남자들은 개폭망’, ‘개쩌는 주말이었어’, ‘캐서린은 개쩌는’이라고 노래할 때면 객석의 열기가 달아오른다. 외에도 ‘악플 쩔더라’, ‘반응 어쩔’ 등 ‘식스’에는 500년전, 튜더 왕가의 언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신조어가 톡톡 등장한다. 물론 원가사의 의미와 라임을 살리려 한 대목도 눈에 띈다. 특히 대표 넘버 ‘SIX’의 라임이 대표적이다. 원 가사의 ‘one, two, three, for(four), five, six’는 ‘우릴(1) 하나로 묶을 순 없어, 잊(2)혀졌던 우리의 역사, 내 삶(3) 영광 이제 되찾아, 자(4), 5분 동안. 우린 SIX’로 번역되었는데,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번역이 아닐 수 없다.
다양성은 캐스팅에서도 발견된다. 대극장 주연배우와 K-팝 가수, 앙상블, 대학로 배우 등 제작진은 다양한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 한편 여성들이 주인공인 만큼 ‘식스’는 밴드 역시 여성으로만 구성했는데, 보이지 않는 스태프 역시 모두 여성이란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 연출 제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의 경쟁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해묵은 주제의 반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방점은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story)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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