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제도 탓하는 정권…백년대계 요원

  • 등록 2023-04-25 오전 6:00:00

    수정 2023-04-25 오전 6:00:00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하루하루가 황금같은 시간인데 12일간 수업을 듣지 못하면 치명적이다.”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 측이 학교폭력(학폭) 가해 행위로 받은 출석정지 처분에 반발해 제출한 가처분 신청서의 일부분이다.

정 변호사 아들로부터 학폭 피해를 입은 학생은 2년간 정상수업을 이틀밖에 듣지 못할 정도로 후유증을 겪었다. 지속적 학폭 피해로 우울증·공황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 학생은 당해 연도는 물론 이듬해인 2021년 3월까지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진학은커녕 정신적 피해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사실이 알려졌다. 반면 피해 학생이 고통받는 사이 정 변호사 아들은 고교 졸업 후 2020학년도 서울대 정시전형에 무사히 합격했다.

학폭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징계처분은 경중에 따라 1~9호까지 분류된다. 정 변호사 아들은 학폭 심의과정에서 가해 행위의 심각성이 확인됐기에 전학 처분을 받았다. 가·피해자 간 재심 청구 등으로 한 때 ‘전학(8호)’이 ‘출석정지(6호)’로 수정되기도 했지만 결국 최종 처분은 ‘전학’이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1학기 약 1만 건에 달하는 전체 학폭 심의 건수 중 전학(4.5%)과 퇴학(0.2%)은 4.7%에 불과하다. 그만큼 전학 처분은 웬만큼 심각하지 않으면 내려지지 않는 징계처분이다. 그럼에도 당시 정순신 검사는 ‘법 기술자’의 지위를 악용해 대법원까지 가는 끝장 소송을 진행하면서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인사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내정한 것은 현 정부의 엄연한 인사 검증 실패다. 하지만 대통령은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에 근절대책 마련을 지시함으로써 프레임 전환에 성공했다. 그 뒤 여론은 인사 검증 실패의 원인이나 책임보다는 향후 학폭근절대책이 어떻게 수정될지에 맞춰졌다. 특히 교육부 장관이 대입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서도 학폭 징계 기록이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시사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입시 문제로 옮아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입시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 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때 제출한 동양대 총장 표창장 등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불공정이 불거진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을 확정한 뒤 1년밖에 지나지 않은 2019년에 ‘서울 16개 대학 정시 40%’ 권고안을 들고나왔다. 서울대 등 서울 상위권 대학 16곳에 학종 비중이 높다는 이유 등을 들어 2023학년도까지 수능전형 확대를 압박한 것이다. 상당수 학생들은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입시전략을 바꿔야 했다.

이쯤 되니 인사 검증 실패를 제도 탓으로 몰아가는 게 정권의 속성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인사 검증 실패 후 뒤따라야 할 자기반성 대신 제도만 뜯어고친다면 교육정책은 조변석개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사건·논란 때마다 바뀌는 제도로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죄 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10년 이상 유지될 안정성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쪽은 결국 정권과 정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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