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임도 덕분에 500년 산림성지 울진 금강송 군락지 지켰죠”

작년 3월 울진·삼척 산불로 서울 면적 27% 1.6만㏊ 잿더미
2020년부터 조성한 임도 최후방어선으로 활용 금강송 지켜
당시 임도 설치된 지역이 미설치 지역比 피해규모 10분의1
  • 등록 2023-10-31 오전 6:00:00

    수정 2023-10-31 오전 6:00:00

산림청 소속 산림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2022년 3월 7일 경북 울진의 산불진화용 임도를 보루로 삼아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울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26일 취재진이 방문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원은 아직도 화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하얗게 변해있었고, 수백년의 세월을 버틴 노송들도 산불의 위력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서 있었다. 다만 다양한 꽃과 풀들은 신기할 정도로 다시 살아났고, 불에 탄 나무들을 제외하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전형적인 한국의 산 풍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2022년 3월 4일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의 발화점으로 지목된 경북 울진군 북면 상당리의 한 도로변. (사진=박진환 기자)


지난해 3월 4일 오전 11시 17분 경북 울진군 북면 상당리의 한 도로변에서 시작한 산불은 건조한 날씨에 봄철 강한 바람인 양간지풍을 타고, 강원 삼척까지 확산하면서 13일 오전 9시까지 열흘간 1만 6302㏊(163㎢)에 달하는 산림을 태웠다. 이는 서울시의 27%에 달하는 면적이다. 피해액은 9086억원, 7000여명 이상의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이자 최장기 산불로 기록됐다. 이 일대에서 가을철 산불진화 훈련을 하고 있던 산림청 소속 산림재난특수진화대원들에게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울진 북면에서 시작한 산불은 동북풍을 타고, 울진 한울 원자력 발전소와 삼척 LNG기지 방향으로 확산했고, 산림·소방당국은 인력과 장비 대부분을 원전과 LNG기지 방어에 집중했다. 그러나 바람이 다시 서풍으로 바뀌면서 울진 금강송 군락지는 인력과 장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며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전했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원은 산불 발생 1년 7개월 만에 식생들이 다시 자라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2247㏊ 산지에는 수령 200년 넘는 노송(老松) 8만그루를 비롯해 1000만그루 이상의 금강송이 자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일반인 접근이 통제됐을 뿐 아니라 1959년 국내 유일의 육종보호림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도 소수의 예약 탐방객만 받을 정도로 치밀하게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금강송은 목질이 우수해 예로부터 왕실의 건축용 자재로 사용됐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서울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사용됐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설치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 (사진=박진환 기자)


금강송 군락지는 생태·경제적 가치와 함께 역사·문화적 가치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산림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산림청은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사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산불 진화에 가장 도움을 줬던 것이 바로 산불진화용 임도였다. 산림청은 대형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을 비롯해 보전가치가 있는 산림·주요 시설물과 인접한 지역 중 국유림을 대상으로 2020년부터 산불진화임도를 시범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산불진화임도는 3.5~5m의 너비로 산불 발생 시 산불진화차량이 양방향 교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 곳곳에 산불진화용수를 공급하는 취수장을 설치하는 등 산불 등 산림재난에 대비하고, 경제림 육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 시설이다. 반면 일반임도 대비 높는 공사비와 함께 노폭증가 등에 따른 환경훼손 논란은 전국적으로 임도 확충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3월 13일 주불진화가 완료된 경북 울진군 일원 산불현장 전경. (사진=산림청 제공)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 현장에 투입됐던 진화대원들은 “임도는 이제 선택이 아닌 산림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실증적인 수치로도 입증됐다.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 당시 임도가 거의 설치되지 않았던 응봉산 권역(임도밀도 0.10m/㏊)의 피해규모는 2646㏊로 임도 설치가 이뤄진 소광리 권역(임도밀도 12.6m/㏊)에 비해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 현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문지원 울진국유림관리소 보호팀장은 “임도가 산불이 발생할 경우 불길이 된다는 말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라며 “봄철 강한 바람이 불면 야간은 물론 주간에도 헬기도 뜨기 힘들 상황에서 인력이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임도를 통해서만 진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울진·삼척 산불과 같이 초대형 산불이 나더라도 임도 자체가 산불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당시 산불진화 임도를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한 끝에 금강송 군락지를 지킬 수 있었다”고 단언했다.

김영훈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이 2022년 3월 발생한 울진 삼척 산불의 피해 상황 및 복원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김영훈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은 “중장령림이 많은 우리나라 산림은 낙엽 등 연료량 증가로 지상진화에 어려움이 많다. 다만 관리가 잘 된 임도는 그 자체로 방어선 역할을 한다”면서 “국유림은 중장기적으로 예산을 세워 임도를 확충하고 있지만 산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유림은 임도 설치 비율이 낮아 산불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산주들과 얘기해 보면 임도 시설로 산림경영면적이 줄어들고, 외부인들의 출입이 용이해져 송이버섯이나 산나물 등을 뺏긴다는 우려를 한다”며 “산림 재난에 대비하고 산의 가치를 높이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임도 확충에 전향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림청 소속 산림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 현장에서 산불의 연료역할을 하는 낙엽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산림청 제공)


올해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우리나라는 산림재난의 최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산불진화헬기의 주력인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부품 수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러시아산 헬기 운용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산림청은 그 대안으로 헬기 임차를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기존과 동일한 수준의 헬기를 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계속된 이상기후로 봄철 헬기가 뜨기 어려울 정도의 강풍이 부는 기간도 길어지면서 공중 진화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앞으로 산불은 공중과 지상에서 입체적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산불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진화용 임도를 확충해야만 산림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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