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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칼럼]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 [이데일리 고규대 연예스포츠부 부장] “오직 예술적 완성도로만 영화를 선정하겠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배우 강수연(49)의 취임 일성이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를 마친 후 영화기자들과 서울 중구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하면서 못다 한 말도 꺼냈다. 10월 1일 올해 20년째를 맡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사령탑에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나란히 오른 것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데일리가 광복 70년을 맞아 선정위원을 통해 뽑은 ‘한국을 바꾼 70대 제품’에도 이름도 올랐다. 일본의 한 방송인이 “한국 영화가 대학 수준이라면, 일본 영화는 유치원 수준”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리매김한 데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의 영화 각 분야에 재능 있는 이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아낸 덕분이다.부산국제영화제는 밖으로, 안으로 도전에 직면했다. 북경영화제, 칭따오영화제, 도쿄영화제 등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커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대한민국 영화제가 아니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고,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제라는 게 강수연의 말이다. 안으로는 영화제를 예술로 보지 않고 정치의 하나나 경제 논리로 해석하는 작태가 문제다. 강수연이 2012년 이후 지속된 이용관 집행위원장 1인 체제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합류한 이유는 부산시와의 타협의 결과물이다. “예술적 완성도”라는 강수연의 표현은 지난해부터 불거진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작 선정 문제, 예산 집행 문제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월호 사건을 영화로 옮긴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 등과 갈등을 벌였다. 부산시가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말이 돌았고,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사전 검열을 시도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또 영화진흥위원회가 거의 정례화된 영화제 지원금 규모를 반 가까이 삭감하며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영화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적 갈등 양상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지난 2월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타협 결과 공동집행위원장 체제, 부조직위원장 신설, 일자리박람회 개최 등이 등장했다. 물망에 오른 배우 안성기·조재현·강수연과 박광수 감독 중 강수연이 낙점됐다. 부산시가 조재현을 밀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안성기 또는 강수연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강수연은 저간의 사정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터라 선뜻 공동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영화계에서는 폭넓은 영화계의 인맥이나 강단 있는 성격 등을 비춰 강수연의 선임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강수연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직 그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서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가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내뱉는 명대사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류승완 감독이 평소 강수연이 즐겨 쓰는 이 말을 기억해뒀다 이 영화에 썼다. 류승완 감독은 필자에게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통해 강수연으로부터 이 말의 사용을 허락받고 시사회에 초청해 감사의 말도 전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대사는 상대적으로 돈과 권력이 없다고 한 인간으로서, 한 명의 직업인으로 자존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건배사처럼 쓸 때는 ‘우리’ 대신 “배우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로 쓴다. 강수연은 19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이미지 때문에 CF를 고르는 통에 큰돈을 만지지 못했다. 돈보다는 배우의 자존심,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자는 의미도 본인의 평소 생각에서 나왔다.세계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그 틀이 훼손될까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강수연의 말처럼 폭염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촬영에 나선 영화인은 자부심, 자존감, 체면으로 똘똘 뭉쳐있다. 부조직위원장 신설 등으로 영화제에 외부의 입김이 가시화된 지금,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의 지혜가 발휘되기를 바란다.
- '신서유기' 중국 촬영 장면 포착..이수근 손오공?
- ‘신서유기’ 촬영 장면[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신서유기’ 중국 현지 촬영 모습이 포착됐다.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신서유기’ 촬영 모습”의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강호동을 비롯해 이수근, 이승기, 은지원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수근이 머리에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머리띠를 하고 손에는 봉을 들고 있다.인터넷 콘텐츠 ‘신서유기’는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작품으로 강호동,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이 손잡으면서 화제가 됐다. 서유기(西遊記)는 중국 소설 3대 기서의 하나로 당나라의 승려 현장의 인도 여행에 관한 전설에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가 어려움을 딛고 천축에 가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신서유기’ 제작진은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 시안으로 출국했다. 빠르면 이달 말 늦어도 9월 초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관련기사 ◀☞ ''용팔이'' 주원X유승목, 이 심장 쫄깃한 조합☞ ''소녀시대 팬덤''은 제시카를 응원할 수 있을까☞ 걸그룹 여름대전, 결과는 ''팬덤 대결'' 완성판☞ 원더걸스·티아라 ''미치게 만든'' 쇼케이스 현장 ''팬덤''☞ 미스틱 측 "엄정화·엄태웅, 정식 러브콜 NO..빨리 접촉할 것"(공식입장)
- 김현중 "최씨는 범죄혐의자, 문자 메시지 노출은 명예훼손"
- 김현중[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김현중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전 여자친구인 최모 씨가 공개한 사생활이 담긴 문자메시지에 대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김현중의 법률대리인인 청파 이재만 변호사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씨는 공갈, 무고, 소송사기, 명예훼손죄에 대한 피의자입니다. 피의자는 이러한 죄로 인해 중한 처벌이 예상 되어 현재 검찰에 의하여 출국금지처분 상태에 있는 범죄혐의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피의자는 자숙하기는커녕 언론매체에 김현중과 나눈 지극히 사생활적인 문자 메시지를 특정 부분만 편집하여 일방적으로 왜곡 보도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김현중은 물론 관련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를 자행하여 사회에 불신을 초래하고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피의자 최씨의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이며 지극히 사생활영역인 문자메시지에 대한 폭로는 김현중과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사절차나 재판과 무관한 부분에 대하여 선정적으로 여과 없이 지속적으로 보도를 하는 일부 매체에 대하여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김현중과 최 씨는 현재 임신, 유산, 폭행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8월 김현중을 폭행치상 및 상해 혐의로 고소한 바 있으며, 지난 4월 16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씨가 김현중을 상대로 제기한 16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3차 변론준비기일이 내달 23일 열린다. 이하 보도자료 전문1. 최근 보도에 대하여 최씨는 공갈, 무고, 소송사기, 명예훼손죄에 대한 피의자입니다. 피의자는 이러한 죄로 인해 중한 처벌이 예상 되어 현재 검찰에 의하여 출국금지처분 상태에 있는 범죄혐의자입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자숙하기는커녕 언론매체에 김현중씨와 나눈 지극히 사생활적인 문자 메시지를 특정 부분만 편집하여 일방적으로 왜곡 보도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김현중씨는 물론 관련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를 자행하여 사회에 불신을 초래하고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피의자 최씨의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이며 지극히 사생활영역인 문자메세지에 대한 폭로는 김현중씨와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사절차나 재판과 무관한 부분에 대하여 선정적으로 여과 없이 지속적으로 보도를 하는 일부 매체에 대하여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피의자측은 2014년 김현중씨를 상해죄로 고소한 후 “맞아서 유산되었다 ” 는 것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연예계에서 매장당할 것이라는 공포심에 빠진 김현중씨는 6억 원을 주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2015년 1월 5일경 김현중씨에게 돈을 요구하였다가 거부당하자 2015년 3월호 여성잡지에서 “피고인의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인터뷰로 김현중씨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받지 못하자 2015년 4월 7일에 16억원 청구소송을 하면서 “맞아서 유산되었다”는 폭로를 하겠다면서 협박하였습니다. 김현중씨가 모든 것을 밝히기로 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피의자의 협박에 굴복하면 앞으로 협박할 때마다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번에 돈을 준다 하더라도 협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두 번째, 협박을 받을 때의 고통은 마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모든 것을 밝히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피의자는 김현중씨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자 끝내 지난해에 협박한 대로 2015년 5월 11일 방송국에 “김현중에게 맞아서 유산되었다”며 선정적으로 보도가 나오게 하였습니다. 김현중씨측은 왜곡된 보도 내용이 대중들에게 사실로 인식될 것을 우려하여 비로서 대응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김현중씨는 피의자의 임신여부를 산부인과에서 확인을 한 결과 ‘폭행으로 유산은 커녕 그 당시 임신 한 적 조차 없음이 밝혀져서 무고, 공갈’등으로 피의자를 고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피의자가 수사나 재판과 무관한 지극히 내밀한 사생활 영역인 문자메세지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범죄수사나 민사재판의 쟁점을 흐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김현중씨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입니다. 김현중씨는 연예인 생활을 못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피의자의 범죄혐의는 밝히겠다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피의자의 범죄행위와 관련 배후자들의 범죄에 대하여는 추가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피의자는 김현중씨에게 “임신 중 맞았다”면서 22억 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9월에 6억 원을 받았고 금년 4월에 16억 원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4년 5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7개월 동안에 무려 4번 임신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에 제출된 A, B, C 산부인과의 사실조회 회신서들에 의하면, 4번의 임신 중 2번의 임신은 허위주장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2014년 5월 임신과 폭행으로 인한 유산 주장입니다. 재판부에 제출된 A 산부인과의 사실조회 회신서에 의하면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B 산부인과의 사실조회 회신서에 의하면 2014년 12월 7일 임신중절 주장도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2. 첫 번째 쟁점 : 폭행으로 유산되었는지 여부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쟁점은 2014년 5월의 폭행으로 인하여 유산되었는지 여부입니다. 피의자가 작년 2014년 5월의 임신 중 폭행으로 유산되었다고 협박하여 김현중으로부터 6억 원을 받았습니다. 피의자는 간이임신테스트기에 임신반응이 있었다며 그 간이테스트기 사진을 김현중씨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냈고, 김현중씨도 그 사진을 보아 임신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피의자는 지난 4개월 동안의 16억원 민사재판 진행 중에 간이임신테스트 스틱을 재판부에는 제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민사재판부에 제출된 ‘초음파검사와 성선자극호르몬검사를 한 A 산부인과 진료기록’에 의하면 피의자는 2014년 5월 20일, 2014년 6월 13일 모두 임신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연히 2014년 6월 1일 유산한 적도 없고 2014년 6월 13일 유산에 따른 치료를 받은 일도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인 2014년 5월의 임신과 유산에 대한 진실 여부의 판단은 재판부에서 합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간이임신테스트 스틱과 문자 메시지를 재판부가 아닌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하여 쟁점을 흐리려는 의도로 보여집니다.2014년 5월 20일, A 산부인과 진료기록지에 의하면 처음에 ‘자가 test(+)’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기재된 것으로 보아 피의자는 집에서 행한 간이임신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산부인과를 찾아가 2014년 5월 20일 임신확인을 위한 정밀검사를 받은 것입니다. 이때 피의자는 김현중씨와 함께 가서 김현중씨를 주차장에서 기다리게 하고 홀로 A 산부인과에 들어갔습니다. 피의자는 의사의 진단 결과 임신이 아닌 것임을 확인하고도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김현중씨에게는 임신이 되었다고 첫 번째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피의자는 2014년 5월 30일 김현중씨와 서로 실랑이가 있었는데 이때의 실랑이를 폭행이라면서 폭행으로 유산이 되었다고 두 번째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임신을 하지 않았으면서 김현중씨에게 임신하였다고 속였고 이를 ‘폭행으로 인한 유산’으로 몰아간 것입니다.또한, 피의자는 2014년 6월 13일 김현중씨에게 A 산부인과에 가서 유산에 따른 치료를 받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미 A 산부인과에서 임신이 아님을 확인 받고도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김현중씨에게 유산에 따른 치료를 받았다고 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 당시 김현중씨는 피의자의 임신, 실랑이에 의한 유산, 유산에 따른 치료 등 세차례의 거짓말을 모두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15일 폭행으로 유산되었다는 협박에 피의자에게 6억 원을 줄 정도로 겁을 먹었던 것입니다. 피의자가 지난해에 김현중씨를 4건의 폭행 등으로 고소하면서도 폭행으로 인한 유산 건으로는 고소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수사를 통하여 쉽게 무고임이 들어 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16억원 민사소송에서 폭행으로 인한 유산건을 포함시켰다가 피의자의 거짓말이 드러나게 되자, 피의자는 사건의 쟁점을 흐리고자 일부 매체와 함께 김현중씨의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 법무법인은 피의자의 일방적인 폭로에 대한 여과없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3. 두 번째 쟁점 : 친자인지 여부 두 번째 쟁점은 현재의 임신과 관련된 의혹입니다. 피의자는 임신하였다고 할 때마다 김현중씨에게 고가의 시계나 반지, 목걸이, 고가의 옷 등 많은 것을 요구하여 받아 갔습니다. 임신 중 맞아서 유산된 것을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자 김현중씨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공황증을 앓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피의자는 김현중씨에게 이미 두 차례나 임신하지 않았음에도 임신하였다고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으므로 현재의 임신에 대하여도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의자는 2014년 가을에도 임신하였다며 제주도에서 쉬고 있는 김현중씨를 찾아와서 협박을 하였습니다. 김현중씨는 주변에서 피의자를 잘 달래라고 말하여 피의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는 2014년 가을에 임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김현중씨에게 임신 거짓말을 덮기 위해 2014년 12월 7일 임신중절 수술을 한다면서 김현중씨로부터 수술비 150만원을 받았고 함께 C 산부인과로 갔습니다. 피의자는 C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김현중씨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아 매우 힘들다며 옷 등을 사 달라고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C 산부인과의 사실조회 회보서에 의하면, 피의자는 2014년 12월 7일 C 산부인과에 방문한 적조차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의자는 2014년 12월 7일 임신중절을 하고 그로부터 13일 후인 2014년 12월 20일 또 임신하였다는 것입니다. 피의자가 김현중씨와 2014년 12월 20일 이후에는 전혀 성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2014년 12월 20일경 임신되었는지를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김현중 측 대리인은 확인을 위해 피의자 측 대리인에게 D병원 산부인과에서 촬영된 초음파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할 것을 서면으로 요청하였습니다. 초음파 사진 상 태아의 크기를 확인하면 임신 몇 주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음파사진은 현재 임신 중의 태아가 김현중의 친자인지 여부를 일차적으로 가릴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재판부에 초음파사진 을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태아가 2014년 12월 20일경 임신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임신한 것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어 친자여부에 대해 의혹만 키우고 있는 실정입니다.김현중씨 측이 태아가 친자로 확인되면 아이 아빠로서의 책임을 지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재판부에 초음파 사진을 제출하는 대신 김현중씨의 부모에게 산모 이름도 없고 시간도 틀리는, 의혹이 많은 초음파 사진을 문자로 보내면서 그것이 김현중의 친자라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의자가 만약 재판부에 다른 사람의 초음파사진을 제출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현중씨는 초음파 사진의 진위를 담보하기 위하여 재판부에 초음파 사진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피의자는 김현중씨의 이미지를 훼손할 의도로 초음파 사진의 진위를 담보할 수 없는 방송국에만 초음파 사진을 보냈을 뿐, 현재까지도 재판부에는 초음파 사진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의자는 이러 저러한 변명을 하지 말고 즉시 D병원 산부인과에서 촬영된 초음파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김현중씨는 친자인지 여부를 일차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문자내용에 대하여 피의자가 폭로한 민망한 내용의 문자들은 7개월 동안 4번이나 임신하였다는 피의자와 김현중씨가 나눈 문자들로써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의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로는 도덕적인 비난을 넘어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인격살인에 해당하는 범죄행각입니다. 문자 내용은 특정 부분만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마치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 상황과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피의자를 비하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임신쟁이새끼’라는 말은 피의자가 단 기간에 여러 번 임신하였다고 하니까 김현중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임신을 잘 시키는지 자신에 대하여 자조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내 젓자(정자의 오타) 튼튼해서 시러(싫어)’ ‘무슨 임신기계냐?’라는 말은 서로에 대하여 임신이 너무 잘 된다고 자조적으로 한 말입니다. ‘돼지같은 게 걸려서 퍽(뻑의 오타)하면 임신이라니’의 ‘돼지’는 피의자의 애칭이라고 합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으로서 뚱뚱하지도 않은데 너무 잘 먹어서 김현중씨가 평소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피의자가 걸핏하면 임신이라니’라는 말이지 피의자를 돼지라고 비하하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더구나 사귀는 사람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성적인 이야기에 피의자도 ‘학(하악, 감탄사)... 야한 옵빠야(오빠야)’라고 대거리를 한 것으로 보아 이는 서로 간에 주고받은 내밀한 대화입니다. 이러한 잠자리에서 주고받았을 듯한 매우 사적인 부분의 문자를 밝은 대낮에 정색을 하고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김현중씨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피의자의 범죄 혐의의 본질과 쟁점을 흐리게 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이러한 편집된 일부 문자를 일방적으로 보도자료라는 형식으로 언론매체 등에 공개하는 피의자의 대담한 행위만 보아도, 피의자가 그 동안 얼마나 김현중씨를 협박하였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공인은 모름지기 홀로 있을 때도 진중하여야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김현중씨의 문자내용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므로 그 점에 대하여 김현중씨도 자신의 경솔함을 깊이 자책하고 있습니다. 김현중씨의 모친은 지난해에 피의자의 무고로 인하여 “자식이 내 앞에서 죽는 꼴은 못보겠다”며 3차례나 유서를 썼을 정도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현중씨는 허위내용으로 고소당한 것 인줄 모르고 “ 맞아서 유산되었다는 것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지난해 폭행고소건에 대하여는 대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일방적인 문자내용의 공개로 군복무중인 김현중씨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행여 다른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5. J씨 증인채택 주장에 대하여피의자측은 2014년 7월 김현중씨로부터 폭행당하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J씨의 알몸 운운하는 선정적인 내용과 함께 폭행을 입증하겠다면서 J씨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재판부에 의하여 증인으로 채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인 채택을 보류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피의자가 지난 해 2014년 8월, 김현중씨를 7월 폭행건을 포함하여 4건의 폭행으로 고소하였을 때 다시는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고 고소를 취하하였기 때문입니다. 김현중씨는 상해죄 2건으로 약식기소 되었고 7월 폭행 건을 포함한 2건은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약식기소 된 2건 중 첫째 폭행 건은 A정형외과 발행의 상해진단서에 의하면 복부폭행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둘째, 6주 갈비 골절 상해 건은 A, B정형외과의 진료 기록에 의하면 김현중씨에 의한 폭행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인해 현재 피의자는 무고죄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더구나 알몸 운운하는 7월 폭행 건은 그 당시 더 이상 민형사상 이의를 하지 않기로 하여 고소 취하를 하였기 때문에 김현중씨는 처벌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재판부는 7월 폭행사건이 더 이상 16억 원 손해배상청구사건의 청구원인인 불법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증인 채택을 보류한 것입니다. 즉 7월 폭행에 대한 입증은 16억 원 손해배상 사건의 쟁점과 무관하여 채택할 필요가 없는 무용의 절차입니다. 그런데도 피의자측은 재판부의 판단을 무시하고 증인 J씨가 증인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면서 이번 16억 원 손해배상청구사건의 청구원인도 아닌 7월 폭행을 입증하겠다며 선정적인 내용으로 언론을 이용하여 김현중씨의 명예와 이 사건의 쟁점과 무관한 J씨의 명예도 훼손하는 범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의자의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인 사생활 폭로에 대하여 여과 없는 보도가 되고 있기에 본 법무법인은 재판과 무관한 문자메세지 폭로로 김현중씨와 J씨의 명예가 훼손되는 점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6. 김현중씨의 심경 김현중씨를 처음 만나 상담하였을 때, 대낮인데도 커튼을 드리운 컴컴한 아파트 방에서 거실 등 하나만을 켜놓고 있었습니다. 케이팝 스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히 불안하고 겁먹은 상태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연예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므로 김현중씨에게 자살의 위기가 엄습해 있다는 판단이 들어 부모님에게 ‘절대 혼자 두지 마라’고 조언할 정도였습니다. 김현중씨가 마치 전쟁터에 혼자 있는듯한 극한 공포 속에서 그동안 심한 협박을 받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김현중씨는 피의자로부터 계속적으로 협박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서 또 다시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극심한 공포심에 빠져있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상태를 보고 작년 사건이 모두 피의자가 정교하게 조작했고 그로 인해 피의자의 거짓말을 사실로 알고 있었기에 6억 원을 줄 수밖에 없는 상태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7. 결 어 피의자와 김현중씨가 나눈 지극히 사적인 문자 메시지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피의자의 일방적인 문자 메시지 폭로는 범죄입니다. 일방적인 사적인 문자 메시지 공개는 자신을 해하고 상대방을 해하고 심지어 제3자까지 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며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파장까지 우려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피의자 최씨의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인 폭로가 김현중씨와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사실 확인 없이 성급하고 여과 없는 보도를 계속하는 일부 매체에 대하여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관련기사 ◀☞ ''너사시'', 하지원·이진욱만 있나..''8人4色 커플열전''☞ "김범을 찾았다"..20대男 원톱 배우로의 성장☞ ''엄마의 프로정신''..전지현 측, "컨디션 회복+스케줄 소화 병행"☞ ''택시'' 송호범 아내 백승혜, 비키니 피팅모델 시절 ''볼륨 몸매''☞ 오늘(5일) 개봉 ''베테랑'', 예매율 1위..新흥행질주 스타트
- 최동훈 감독이 말한다..'암살' 키워드 "김원봉부터 의열단까지, 잊지 말아야"
- 영화 ‘암살’[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최동훈 감독이 말한다..‘암살’ 키워드 “김원봉부터 의열단까지, 잊지 말아야..”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31일 오전 기준 502만5037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① 신흥무관학교‘암살’의 메가폰을 잡은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의 단초를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됐다. 바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이다. 우당 이희영은 한 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밀사’ ‘신흥무관학교’ ‘고종의 국외망명’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으며 신채호, 이을규 등과 무정부주의(아나키스트)운동을 전개했다.(이상 두산백과 출처)‘암살’에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 조진웅은 신흥무관학교의 마지막 멤버로 표현된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대 만주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학교다. 독립군 지청천(일명 이청천)이 300여 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생도들로 부대를 구성,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에 참여해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일제가 1920년 5월부터 대대적으로 독립군 탄압에 나서면서 같은 해 폐교되었다. “낙엽이 지기 전에 무기를 준비하여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고 독립운동의 꿈을 키운 속사포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최동훈 감독 曰, “실제로 독립군 이야기를 품게 된 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 때문이다. 나 같은 범인들은 갖지 못한 어떤 위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결단이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걸 영화에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영화 ‘암살’에서 간도참변을 겪은 안옥윤 역을 맡은 전지현.② 간도참변간도참변은 경신참변 또는 경신간도학살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일어났던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한국인사회·항일단체·학교·교회 등을 초토화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일본군은 1921년 4월까지 수많은 한국인 마을을 대상으로 방화·약탈을 일삼고 한국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하였는데, 이 사건을 일컬어 ‘간도참변’이라 한다. 간도참변으로 한국인 3,700여 명이 피살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참변으로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한국인 사회 및 항일단체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출처 두산백과) ‘암살’에서 신념의 독립군 ‘안옥윤’(전지현 분)은 간도참변으로 어머니를 잃은 인물로 그려진다. 극 중 담담하게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는 ‘안옥윤’(전지현 분)의 모습을 통해 끔찍했던 간도참변의 실상은 물론, 그녀의 신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동훈 감독 曰, “만주에서 독립군들과 함께 살았던 안옥윤은 어떤 일들을 겪으며 컸을까? 그녀가 가진 신념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나라를 잃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 그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희망. 어린 안옥윤은 그 속에서 성장했다.”의열단의 활약을 다룬 당시 기사.③ 의열단의열단은 아나키스트 성격을 띤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의열단은 비폭력투쟁이었던 3·1운동의 실패가 일본의 폭력으로 인한 것이라 판단하여 ‘암살’을 해방을 위한 정의로 삼았다. ‘암살’에서는 의열단의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이 등장해 암살 작전에 대한 그들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 △최동훈 감독 曰, “일제 강점기에 의열단은 친일파나 일본 관료들을 암살했다. 단재 신채호선생이 쓰신 의열단 창단 선언문은 힘찬 어조와 기개가 빛나는 명문으로서 깡패일본에 무장투쟁으로 항거함이 정당하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김구와 김원봉이 힘을 합친 건 역사에선 1939 이후의 일이다. 그 역사적인 배경을 놓고 허구의 인물들이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암살’의 배경이 1933년이니 더 앞당겨 만들어낸 이야기다. 당시 일제가 김원봉에 내건 현상금이 100원이다. 김구가 60원이었고, 그때 일본의 만주철도회사가 세운 조선호텔 건설비용이 120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친일파를 처단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지청천 장군④ 지청천 부대1930년 지청천은 한족자치연합회를 모체로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소속 독립군으로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여 일본군에 대한 항전을 전개하였다. 1931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은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였다. 1933년 7월 3일 한중연합군은 대전자령에 매복, 일본군을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암살’에서는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이 한국독립군 이청천 부대 제 3지대 저격수 소속으로 등장한다. △최동훈 감독 曰, “1933년은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의 한 국면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광복군이 만들어졌을 때 광복군의 총사령관을 했던 지청천 장군은 당시 만주에서 무력조직을 이끌고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던 인물이고, 실제로 그 해에 지청천 장군이 대전자령전투에서 중국군과 함께 승리를 거둔다. 그래서 더욱 영화 속 배경 즈음인 1933년이 중요했다.”독립운동가였으나 사회주의자인 약산 김원봉.⑤ 김원봉김원봉은 김구와 필적할만한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였으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6년여에 걸쳐 대규모 암살계획 및 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 투척사건 등을 배후에서 지휘했고, 이후 김구와 함께 공동으로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통신문을 발표하는 등 연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당시 일제는 ‘김구’에게 60만원의 현상금을,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약 200억~300억에 달하는 금액이다. ‘암살’에서는 김구와 함께 암살작전을 계획하고 해방 이후 조국의 운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을 추억하는 김원봉(조승우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최동훈 감독 曰 “김원봉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했던 존재였다.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로 일본 입장에서는 꼭 잡고 싶은 인물이었다. 김원봉은 의지가 남다른 사람이고 정말 잘생겼었다. 부인 박차정 여사가 중국에서 죽었는데, 김원봉이 한국에 올 때 박차정 여사의 옷을 가슴에 품고 왔다. 부산에서 ‘암살’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박차정 여사의 생가가 있더라. 그 때, ‘과거에 있었던 사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김구⑥ 김구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1911년 1월 데라우치 총독 암살모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1914년 탈옥하였고,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를 주도했으며,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가 성공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고, 이듬해 한국광복군을 조직, 항일무장부대를 편성하였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암살’에서는 임시정부의 지도자로서 김구의 암살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리더로서의 진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최동훈 감독 曰, “이봉창과 윤봉길의사의 의거 이후 상하이 일본영사관은 임시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들어갔고 김구선생은 항저우 인근 가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영화 ‘암살’의 시작은 김구 선생의 가흥 시절에서 시작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김구선생의 너털웃음을 짓는 호방함과 동시에 냉철하고 단호한 모습이 떠올랐다.”영화 ‘암살’에서 데라우치 암살 시도로 영화 오프닝을 여는 이정재(가운데)⑦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데라우치 총독’은 일제강점기의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실존인물이다. 그는 무단통치를 자행하여 순사와 헌병을 거리에 배치해 국민을 감시하고 모든 정치활동과 언론을 중지시켰다. 1910년 ‘데라우치 총독’이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독립운동진영은 그를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를 계기로 총독부는 김구 등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고문을 통해 거짓 진술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105명을 기소하여 독립운동을 차단하였는데 이를 ‘105인 사건’이라 한다. ‘암살’의 오프닝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염석진’(이정재 분)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작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아냈다.△최동훈 감독 曰, “일제 강점기가 막 시작된 1911년. 권력의 핵심에 있는 데라우치 총독과 이완용과 손을 잡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친일파가 되어가는 강인국의 캐릭터를 여기서 시작하고 싶었다. 동시에 24살의 염석진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홀홀 단신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한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참지 못하는 당시 어린 청년들의 모습도 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 '암살' 역사 키워드 ⑤ 김원봉 "잊혀지지 말아야할 인물"
- 김원봉[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31일 오전 기준 502만5037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⑤ 김원봉약산(若山) 김원봉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1918년 중국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했다. 1919년 12월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다. 1925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을 지도하면서 중국 관내지역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중국국민당의 동의를 얻어 ‘조선의용대’라는 강력한 군사조직을 편성하기도 하였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내다가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김원봉은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그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그 후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김일성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 제거 작업 때 숙청되었다.(출처 두산백과)김원봉은 김구와 필적할만한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였으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6년여에 걸쳐 대규모 암살계획 및 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 투척사건 등을 배후에서 지휘했고, 이후 김구와 함께 공동으로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통신문을 발표하는 등 연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당시 일제는 ‘김구’에게 60만원의 현상금을,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약 200억~300억에 달하는 금액이다. ‘암살’에서는 김구와 함께 암살작전을 계획하고 해방 이후 조국의 운명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을 추억하는 김원봉(조승우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최동훈 감독 曰 “김원봉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했던 존재였다.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로 일본 입장에서는 꼭 잡고 싶은 인물이었다. 김원봉은 의지가 남다른 사람이고 정말 잘생겼었다. 부인 박차정 여사가 중국에서 죽었는데, 김원봉이 한국에 올 때 박차정 여사의 옷을 가슴에 품고 왔다. 부산에서 ‘암살’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박차정 여사의 생가가 있더라. 그 때, ‘과거에 있었던 사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기사 ◀☞ '암살' 600만 돌파…올해 개봉 韓영화 최고 스코어☞ 진태현♥박시은 부부, "1차 신혼여행은 잠실" 야구장 데이트☞ 송승헌 "아이 많이 낳고 싶어. 늦둥이 자신 있다"☞ '복면가왕' 고추아가씨, 퉁키 꺾고 9대 가왕…퉁키는 이정☞ '복면가왕' 수박씨는 강균성, 허 찔렸다…'소름 돋는 고음'
- '암살' 역사 키워드 ④ 지청천부대 "1933년, 의미 있는 이유"
- 지청천[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31일 오전 기준 502만5037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④ 지청천 부대독립운동가 지청천은 독립운동가, 정치가.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동아혈성동맹(東亞血成同盟)의 간부로서 각지의 항일단체를 규합하는 데 힘썼다. 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항일전을 수행하다가 광복 후 귀국, 대동청년단을 창설했다. 제헌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1930년 지청천은 한족자치연합회를 모체로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소속 독립군으로 ‘한국독립군’을 편성하여 일본군에 대한 항전을 전개하였다. 1931년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은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였다. 1933년 7월 3일 한중연합군은 대전자령에 매복, 일본군을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암살’에서는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이 한국독립군 이청천 부대 제 3지대 저격수 소속으로 등장한다. △최동훈 감독 曰, “1933년은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의 한 국면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광복군이 만들어졌을 때 광복군의 총사령관을 했던 지청천 장군은 당시 만주에서 무력조직을 이끌고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던 인물이고, 실제로 그 해에 지청천 장군이 대전자령전투에서 중국군과 함께 승리를 거둔다. 그래서 더욱 영화 속 배경 즈음인 1933년이 중요했다.”
- '암살' 역사 키워드 ③ 의열단 "친일파 처단, 그리고 싶었다"
- 의열단의 활동을 묘사한 당시 기사.(사진=민족문화대백과)[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암살’ 역사 키워드 ③ 의열단 “친일파 처단, 그리고 싶었다”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31일 오전 기준 502만5037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③ 의열단1920년대에 일본 고관(高官)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20년대 말부터는 급진적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1919년 3·1운동 뒤,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해외로 옮긴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무력에 대항하여 더 조직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필요에 따라 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지린성에서 독립지사들은 민족주의 노선(路線)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인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이 이름은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고 한데서 유래한다.(출처 두산백과)의열단은 아나키스트 성격을 띤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의열단은 비폭력투쟁이었던 3·1운동의 실패가 일본의 폭력으로 인한 것이라 판단하여 ‘암살’을 해방을 위한 정의로 삼았다. ‘암살’에서는 의열단의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이 등장해 암살 작전에 대한 그들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 △최동훈 감독 曰, “일제 강점기에 의열단은 친일파나 일본 관료들을 암살했다. 단재 신채호선생이 쓰신 의열단 창단 선언문은 힘찬 어조와 기개가 빛나는 명문으로서 깡패일본에 무장투쟁으로 항거함이 정당하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김구와 김원봉이 힘을 합친 건 역사에선 1939 이후의 일이다. 그 역사적인 배경을 놓고 허구의 인물들이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암살’의 배경이 1933년이니 더 앞당겨 만들어낸 이야기다. 당시 일제가 김원봉에 내건 현상금이 100원이다. 김구가 60원이었고, 그때 일본의 만주철도회사가 세운 조선호텔 건설비용이 120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친일파를 처단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관련기사 ◀☞ '암살' 역사 키워드 ② 간도참변 "어린 옥윤은 그 속에서 성장했다"☞ '암살' 역사 키워드 ① 신흥무관학교.."우당 이회영을 아십니까?"☞ 박진영 "배용준 박수진 피로연 영상 불법유출..고통스러워해"☞ 샤이니, 오늘(1일) 정오 'Married To The Music' MV 티저 공개☞ 톰 크루즈 'MI5', 이틀간 97만명 동원…주말 스코어는?
- '암살' 역사 키워드 ① 신흥무관학교.."우당 이회영을 아십니까?"
- 영화 ‘암살’. 맨 왼쪽이 속사포 역할을 맡은 조진웅.[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영화적 완성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부여로 또 다른 감동을 낳았다.31일 오전 기준 502만5037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다. 1930년대 강제병탄의 치욕에 빠졌던 영화 속 당시 역사는 미·일·중 3국의 치열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영화 ‘암살’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준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암살’ 속 곳곳에 숨어 있는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의열단, 지청천부대, 김원봉, 김구, 데라우치 등 키워드로 알아본다.① 신흥무관학교‘암살’의 메가폰을 잡은 최동훈 감독은 이 영화의 단초를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됐다. 바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이다. 우당 이희영은 한 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밀사’ ‘신흥무관학교’ ‘고종의 국외망명’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으며 신채호, 이을규 등과 무정부주의(아나키스트)운동을 전개했다.(이상 두산백과 출처)‘암살’에 생계형 독립군 ‘속사포’ 조진웅은 신흥무관학교의 마지막 멤버로 표현된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대 만주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학교다. 독립군 지청천(일명 이청천)이 300여 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생도들로 부대를 구성,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에 참여해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일제가 1920년 5월부터 대대적으로 독립군 탄압에 나서면서 같은 해 폐교되었다. “낙엽이 지기 전에 무기를 준비하여 압록강을 건너고 싶다”고 독립운동의 꿈을 키운 속사포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은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최동훈 감독 曰, “실제로 독립군 이야기를 품게 된 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책 때문이다. 나 같은 범인들은 갖지 못한 어떤 위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겠지만 결단이나 행동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걸 영화에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련기사 ◀☞ 진세연 "김현중 J양? 함부로 얘기하지 마".. 발끈☞ 진세연 "(김현중 J양) 저 아니니 함부로 얘기하지 마세요" 일침☞ 김현중 전 여친 변호사 "김현중 J양, 진세연 아니다"☞ '연평해전' 불법 영상 토렌트 유통.."적발 시 강경 대응"☞ "크리스·루한 中활동은 불법" SM 소송, 베이징 법원 입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