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실험미술 50년, 아직도 유혹에 휘둘린다…이번엔 色

갤러리현대서 '몽유' 전 연 원로화백 이강소
설치·퍼포먼스·비디오 등 韓 실험미술 거장
회화 30여점 엄선…1990년대말부터 최근작
모노톤 벗어난 강렬한 색채로 채운 신작도
"난 순간순간 변해…습관적 붓질 가장 경계"
  • 등록 2021-07-12 오전 3:30:00

    수정 2021-07-12 오전 5:26:45

한국실험미술의 거장 이강소 화백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서 연 개인전 ‘몽유’에 건 회화작품 ‘강에서’(1999) 연작 앞에 섰다. 20여년 전 중국 양쯔강을 여행하면서 받은 감동을 그렸다는 12점 연작 중 3점을 이번 전시에 내놨다. 200호(255×193㎝) 대작이다. 화백은 “전시에 맞춰 몇 점 더 그려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도저히 안 되더라”며 “그림은 그리는 게 아니라 그려지는 것”이라고, 그저 화면에 올리는 칠이 아니란 설명을 보탰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강소(78). 설마 그이가 바람이 날 줄은 몰랐다. 모노톤 먹빛 머금은 붓길 그대로 화업의 끝장을 볼 줄 알았다. 진하고 강렬한 획이 전부일 줄 알았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작업이 그랬듯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색’이라니. 맑은 주황, 투명한 파랑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림이라니. 격한 붓자국에 얹어낸 붉고 푸른 기운이라니.

연한 미소를 흘리던 그이가 ‘색깔 있는’ 해명을 한다. 오랫동안 흑백 수묵화 같은 그림을 그려오던 어느 날 문득 색채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 “20년 전 사둔 아크릴물감을 우연히 꺼내 칠해보고 매혹 당했다. 생각지도 않은 매력이 있더라. 나를 유혹하는 그 색을 찾아봐야겠다 싶더라.” 한마디로 이런 거란다. “화가가 색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색이 화가를 선택한 거다.” 색이 나를 유혹했으니 넘어가 주는 게 예의란 뜻이다.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궁금해서라도.

결국 또 ‘실험’을 했다는 거다. 그림을 그렸으니 화백일 뿐이지, 그이는 한평생 ‘실험미술가’로 살았다. 한국현대미술을 주도한 다채로운 실험으로 시대를 출렁여왔다. 1970년대부터였다. 회화·조각·판화는 물론 설치·퍼포먼스·비디오·사진 등으로 굵고 강렬한 궤적을 그어왔다.

이강소의 색을 들인 ‘청명’ 연작 중 ‘청명-17127’(2017·왼쪽)과 ‘청명-17122’(2017). 각각 주황색과 하늘색을 주조색으로 한 작품은 “나를 유혹했다는 색”을 기꺼이 품어낸 또 다른 실험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중 1973년의 ‘파격’은 아직도 얘깃거리가 된다. 서울 중구 YWCA 지하 명동화랑에, 무교동 길거리에서 떼어왔다는 ‘낙지볶음 조개탕 돼지갈비 생태찌개’가 크게 적힌 입간판을 내걸고 술집을 꾸민 뒤 ‘손님’까지 받은 일. 작품 ‘소멸’이었다. 서른 살 젊은 작가 이강소가 첫 개인전을 앞두고 골몰하다가 자신에게 가장 친밀한 공간 ‘선술집’을 전시하기로 했던 거다. 이강소의 ‘작품’을 보러 들렀던 관람객들은 얼떨결에 100원을 내고 탁주 한 잔씩 받아 마시며 기꺼이 그이의 소품이 돼 줬다. 이 전시를 두고 그이는 “난 멍석을 깔아뒀을 뿐 보는 이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각자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했더랬다.

“생각은 당신들의 몫”이라고 밀어붙인 ‘당황스러운 파격’은 또 있다. 1975년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 내놨던 ‘닭 퍼포먼스’. 전시장에 닭을 풀어둔 건데, ‘무제-75031’이란 제목의 작품은 닭이 횟가루를 뿌려둔 반경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찍어댄 발자국으로 그 흔적을 가늠케 한 작품이다. “왜? 어째서? 어떻게?” 등 쏟아지는 질문에 그이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게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암시만 하는 것이다.”

이강소의 ‘청명’ 연작 중 ‘청명-20098’(2020). 무채색 여백 대신 연한 푸른 바탕에 진한 먹빛으로, 필선에 가까운 일필휘지의 획을 강하게 그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 그이가, DNA의 절반이 ‘실험’인 이강소가, 화면에 색 정도 얹은 것으론 사실 호들갑 떨 일도 못 될지 모른다.

“습관적인 붓질은 하지 않으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로 3년 만에 화백이 돌아왔다. 개인전 ‘몽유’를 이끌고. 도발에 가까웠던 설치·퍼포먼스 등은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회화작품으로만 꾸렸다.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30여점을 엄선해 걸었다. 스스로 ‘수묵’이라 했던 필선에 가까운 일필휘지의 역동적 붓감이 살아있는 대형연작 ‘강에서’(1999)를 앞세워, 2010년대 중반부터 이름 붙인 모노톤의 ‘청명’(2016·2018·2020) 연작, 바탕부터 서서히 색을 들여 종내는 먹색까지 빼버린 ‘청명’(2017·2018·2019·2020·2021) 연작까지, 20여년에 걸친 회화언어의 정수를 뽑아놨다.

이강소의 화업에 중대한 분기점이자 경계이면서 화두가 된 두 가지 ‘청명’이 비스듬히 마주보고 걸렸다. 색을 들인 ‘청명-20018’(2020·왼쪽)과 모노톤의 ‘청명-17082’(2017)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화백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은 건 1985년이다. 뉴욕주립대에서 객원미술가로 머물던 시절이라는데, 흑백의 배경을 나눠 집·나룻배 등 건축구조물을 심고 패턴을 살려내는 ‘이미지 실험’에 나섰다. 얼마 뒤 그이의 회화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른바 ‘오리’다. 추상화에 나타난 획이 마치 오리처럼 보이고 한자 새 을(乙)처럼도 보이는 형체가 박히기 시작한 거다. 사실 화백이 대중성을 얻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게 크다. ‘오리작가’라 부르며 다들 반겼다. 하지만 화백은 ‘오리’가 부각되는 시선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더랬다. 그 저항 아닌 저항은 이번 전시에도 이어졌다. “오리가 아니라 오리 비슷한 것”이라며 “내 그림은 의도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쓰여진 것”이라고 했다.

아마 보이고 싶은 게 오리에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워서였을 거다. 정작 봐야 할 건 따로 있다는 의미에서였을 거다. 이번 참에 작정을 한 듯도 하다. ‘꿈속에서 노닐다’란 뜻의 전시명 ‘몽유’는 “조각이든 캔버스든 그게 뭐든, 가상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작가”란 철학을 확인시키고 있으니. “현실조차 꿈과 같은 가상의 세계”라는 거다. “눈에 보인다고 현실이라 여기지만, 모두 각자 기억과 경험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습관적인 붓질’을 가장 경계한다”고도 했다. “순간순간 내가 변한다”고 믿는 그이에게 ‘오리’는 현실처럼 습관처럼, 고정된 틀로만 여겨졌을 거다.

이강소의 모노톤 ‘청명’ 연작 중 ‘청명-20046’(2020). 어찌 보면 가장 이강소답다 해야 할 작품이다. “습관적인 붓질을 가장 경계한다”는 화백은 “내 그림은 의도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쓰여진 것”이라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동양화붓으로 일필휘지…평생해온 회화실험

화백이 지금껏 고집하는 작업도구는 ‘동양화붓’이다. 서양화붓보다 길이와 부피가 길고 풍성해 화가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업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움직임이 바로 ‘기운생동’이란다. 붓끝이 의도하는 에너지를 미리 간파한 화가의 내밀한 언어라고 할까. 그간 모노톤을 고수했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만물의 기운을 화폭에 담아내려다 보니 색보단 형체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했다”는 거다.

그렇게 부단히 꿈틀대는 화가의, 또 붓의 역동을 그이는 기운생동이라 말했지만 우린 내공이라 읽는다. 한시도 멈추지 않았던, 여든을 바라보는 노화백의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경지 말이다. “정신이 밝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붓질을 했을 때, 그 붓의 역사가 바로 붓의 힘인 것 같다”는 그 ‘한 획의 무게’를 누가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작업 중인 이강소 화백의 손끝과 붓끝을 엿봤다. 화백은 아크릴물감을 묻힌 동양화붓을 고집한다. ‘기운생동’의 붓길을 여는 데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갤러리현대가 이강소 개인전 ‘몽유’에서 소개한 화백의 작업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갤러리현대·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전시장에서 마주친 화백의 아내 이정윤 여사는 남편을 “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평생 프로로 살다 보니, 평생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며 “그런 남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서 배우고 이해하려고 애썼다”고 지난한 세월을 잠시 돌아봤다. 왜 아니겠나. 고뇌를 원하는 세상에는 고뇌로 맞받아쳤고, 실존을 따지는 시대에는 실존을 내보였으며, 위로를 원하는 시절에는 위로를 꺼내놨던 화백이다. 그것을 그이는 늘 고단했을 ‘실험’이라 불렀고, 우린 늘 기분좋은 ‘바람’이라 부르고 싶다. 여전히 그이에게 오늘은, 실험하기 아니 바람나기 좋은 날이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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