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검찰과 경찰이 디지털 범죄 수사의 핵심인 ‘보전명령 제도’ 도입을 두고 10여년간 이어온 의견 차이를 극적으로 해소했다. 보전명령은 디지털 증거가 삭제되기 전에 이를 보관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로, N번방 사건, 딥페이크 범죄 등 신종 디지털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로 꼽힌다. 국제 사이버범죄 협약 가입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 사진= 미드저니 |
|
28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와 대검찰청, 경찰청 등은 최근 보전명령 제도의 주체를 ‘검사’로 하되, 긴급한 경우에는 경찰이 명령하고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보전 기간은 60일을 기본으로 하고 30일 연장이 가능하다. 24시간 네트워크는 검찰과 경찰이 공동 운영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안 도출에는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중재와 검·경 양측의 대승적 차원의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법무부와 경찰청 사이에 보전명령 제도 관련 이견이 조율되지 않아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달 11일 조지호 경찰청장은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불법 영상물에 대한 보전명령의 주체를 누가 할 것인지 등에 대해 (경찰청과) 법무부와 이견이 있다”며 “협의중”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정부는 2022년 10월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고 2023년 2월 유럽평의회로부터 협약 가입 초청을 받았다. 하지만 협약 가입의 전제조건인 보전명령 제도 도입을 둘러싼 부처간 이견으로 가입이 지연돼왔다.
| (그래픽=이미나 기자) |
|
검·경 합의안 도출과 함께 정부는 신속한 협약 가입을 위해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입법 형태를 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송석준·장동혁·유상범·곽규택·박준태 의원 등과 함께 지난 7일 발의한 ‘보전명령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사실상 정부안이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3개월 내 협약 가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협약에 가입하면 구글, 메타(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이 보유한 디지털 증거를 우리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해외 디지털 증거 확보에는 평균 1~2년이 소요되는데 대부분의 디지털 증거는 그 전에 이미 삭제된다. 예컨대 카카오톡은 통신 ‘내용’을 3일, 일본 라인은 통신 ‘내역’을 80~90일만 보관한다.
개정안은 수사기관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없이는 실제 증거 확보가 불가능하도록 제한해 기본권 침해 우려를 최소화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해외로부터 받아야 할 증거가 100이라면 외국에 제공하는 건 1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가 확보해야 할 증거가 해외에 많기 때문에 협약 가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협약 가입시 사이버범죄자의 통신경로 정보 등을 가입국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며 “현재는 비공식적 국제협력에 의존하고 있어 수사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다페스트 협약은 국제 사이버범죄 수사공조를 위한 다자협약으로 현재 76개국이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는 G20(주요 20개국)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미가입 상태다. 법무부는 “협약에 가입하면 24시간 내 증거 보전이 가능해져 수사 역량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