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많은 미디어에서 장애를 극복했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저는 극복이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장애는 극복 대상이 아니거든요. 장애는 함께 노력하면서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나윤(한팔 피트니스 선수)-W페스타 강연참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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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씨는 한팔 피트니스 선수다. 4년 전 불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왼쪽 팔을 절단했다. 친구들과 춘천으로 바람을 쐬러 가다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왼쪽 팔은 떨어져 나갔고 경추와 흉추 등 19군데가 골절됐다. 접합수술에는 성공했지만, 패혈증이 생겨 붙인 팔을 불가피하게 잘라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전도유망했던 10년 차 헤어디자이너에게 찾아온 큰 시련이었다.
“병원에서 샤워를 하면서부터 힘들었어요. 절단 수술을 한 후 석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죠. 두 팔이 있어야 하는데 한 팔인 모습을 보게 됐어요.” 김씨는 17세부터 헤어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항상 거울을 보며 남을 꾸며주는 게 일이었다. 매일 보던 거울에 비친 자신의 한 팔 모습은 낯섦을 넘어선 기괴함이었다. “거울도 보기 싫고 우울감과 좌절감이 시작됐죠.”
폐허가 된듯했던 삶에도 전환점은 찾아왔다. 그가 두 번째로 간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다. 전국의 교통사고 환자들만 모이는 병원이 그에게 숨결을 불어넣어준 공간이 됐다. “전신마비, 뇌병변 환자가 너무 많았어요. 내가 한 팔이 없다는 이유로 좌절한다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생각을 고쳐먹었죠.” 그는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이 사고를 당하고, 척추뼈가 부러졌지만 신경이 있는 척수가 눌리지 않아 마비를 피한 걸 다행이라 여겼다.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나윤(한팔 피트니스 선수)-W페스타 강연참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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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은 삶의 엔진이 됐다. 당연했던 일상과 몸은 소중함으로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왼쪽 팔을 잃어 흐트러진 신체 균형을 잡기 위해 재활운동에도 나설 용기도 생겼다. 보디 프로필을 찍으려던 생각은 피트니스 대회 도전까지 이어져 큰 결실을 낳았다. 그는 지난해 9월 열린 WBC 피트니스 대회에서 비장애인과 당당하게 겨뤄 3관왕(비키니 쇼트, 미즈비키니 톨, 오버롤 부문)을 차지했다. “운이 좋았어요. 운동을 석 달하고 출전한 거라서요. 하지만 아파트 100층 매일 오르기처럼 하루 세운 운동 목표와 ‘새 모이’ 같은 식단은 칼같이 지켜려 했어요.”
그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의수도 벗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미용실에 점장으로 복귀해 2년간 일할 때만 해도 그는 의수를 하고 다녔다. 김씨는 “운동을 하면서 ‘굳이 의수가 필요 없구나, 그런데 왜 착용하고 다녔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며 “‘내가 장애인인 게 싫고 나도 장애를 숨기려 했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한 팔이 없는 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인데 이제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의수 벗기는 장애인 인식 개선 차원의 일이기도 하다. “저부터 시작해보자고 해서 의수를 벗고 장애를 알리고 있어요. 일상에서 ‘이런 게 불편해’라고 친구와 가족에게 얘기하고 같이 생활하니까 가족과 친구들이 제 상지절단장애를 굉장히 잘 알아요. 지금은 역량이 작지만 점점 더 커지면 사회 전반의 흐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당당히 나서고 있지만, 그는 장애를 훌훌 털어버렸다고 과장하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는 더디고 김씨조차 롤러코스터를 탄다. 의수를 하지 않고 다닌 지 1년이 됐지만, 지금도 밖을 나가면 자신을 향한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날 세상은 여전히 벽 같다. ‘컵 옮기기’처럼 사소한 일조차 안될 때는 마음도 갑자기 불편해진다. 그때마다 그래도 그가 놓지 않는 건 매 순간 자기 몸과 장애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다. “언제부터 제가 장애에 대해 괜찮게 됐어가 아니에요. 계속 스며든다고 할까요. 27세에 사고가 났으니까 27년을 한 팔로 살면 그때는 똑같아지지 않을까요.”
|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김나윤(한팔 피트니스 선수)-W페스타 강연참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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