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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였던 서울올림픽 전 치러진 4.13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패배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이끈 민정당은 전체 299석 중 125석(42%)을 차지했고,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이 70석,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이 59석,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 등을 차지했다.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로 접어들었다.
2002년 6월 열린 한일 월드컵 전후로 치러진 선거들의 결과는 엇갈리게 나타났다.
두 달 뒤의 8.8 재보궐선거 결과 역시 여당의 참패, 야당의 압승이었다. 국회의원선거 13곳 중 민주당은 2곳만 건졌고, 한나라당이 남은 11곳에서 이겼다. 김대중 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에 대통령 아들들도 연루된 각종 게이트 의혹이 터지고, 월드컵 기간 중 연평해전이 발생하는 등 여권에 악재가 겹치면서 선거에서 ‘월드컵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 해 12월 16대 대선에서 여당은 ‘드라마틱’한 승리를 얻는다. 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한 노무현 후보가 득표율 48.91%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46.58%)를 꺾은 것이다.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한국팀의 선전에 힘입어 대선후보 반열까지 올랐던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인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음에도 불구, 노 후보는 대권을 거머쥐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국제적인 스포츠 빅 이벤트가 과거엔 대체로 여당에 호재로 작용해왔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고 지적했다. 엄 소장은 “과거엔 이벤트 유치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 등 경제적 효과,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이 기대되면서 민심이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었지만 이번엔 남북 협력을 통한 한반도 긴장감 완화 기대마저 낮아 여당에 외려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