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5년 재판 동안 성공한 화가 됐다…난 국가 장학생"

10년 전 전시 많아지면서 조수 써
"현대미술은 창의력 게임"
"예술에서 조수 써도 된다는 세계 최초의 판례"
  • 등록 2020-07-20 오전 12:00:01

    수정 2020-07-20 오전 12:00:01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5년 동안 국가가 법적으로 나서서 평범한 가수를 성공한 화가로 올려놔 줬다. 이제는 내가 미술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국가 장학생인 셈이다.”

조영남(76)은 ‘그림 대작(代作) 사건’으로 재판을 치러온 지난 5년의 시간에 이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오랜 법정다툼으로 논란이 되면서 오히려 화가로 더 많이 알려진 만큼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지난 17일 이데일리와 만난 조영남은 “현대미술은 창의력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조수를 시켜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한 ‘그림 대작 사건’에 휘말렸다 지난달 25일 최종 무죄선고를 받은 조영남은 최근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펴냈다. 조씨는 최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수를 처음 쓰게 된 배경과 현대미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4년에 걸친 재판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조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화가 2명을 고용해 화투 그림 26점을 그리고 대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로 작품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대법원에서는 조영남의 행위는 사기가 아니었고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예술계의 몫이라며 공을 넘겼다.

조영남은 10여년 전부터 조수를 썼다고 밝혔다. 당시 화가로서 유명세를 타면서 전시가 많아졌는데, 그의 대표작인 ‘화투’ 그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어서 일일이 그리기가 힘들어지자 조수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조씨는 조수에게 본인이 그린 원본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게 했고 조수가 그린 그림에 마무리와 제목, 사인 등을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조 씨는 “현대미술은 창의력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 작품에서 화투를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정도 그림은 초등학생들한테 그리라 해도 비슷하게 그려온다”며 “중요한 건 내가 화투를 꽃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과 ‘극동에서 온 꽃(flower from far east)’이라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재판의 의미를 “예술에서 조수를 써도 괜찮고, 조수를 쓰는 사실을 관객에게 공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법적으로 인정해 준 세계 최초의 판례”라며 “귀한 샘플”이라고 덧붙였다. 또 재판 덕에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 활동을 널리 알게 됐다며 오히려 유명한 화가에 오르게 됐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지난 재판 기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조 씨는 올해 4년 만의 첫 전시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죄가 나오면 전시를 다시 해야하는데 사람들이 내 그림을 구경왔을 때 그림이 생각보다 후지면(기대한 것에 못 미치면) 이런 그림으로 5년 동안 시끄러웠나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린 작품 중에 ‘쏴라 조영남’이라는 게 있는데 그 그림처럼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옳다는 건 밀고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앞으로도 형편에 따라 조수를 쓰기도,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가 많아져 공장 돌리듯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해 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작품 활동은 내 삶의 전부다”며 “병들어서 더 이상 그리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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