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하상길과 배우 김혜자의 특별한 인연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11월 4일 개막
대학시절부터 김혜자의 열혈팬 하상길
'오랜 팬'에서 '동료'로 공동작업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 등 이어
'길 떠나기…' 3번째 연출·배우 작품
불치병 속 희망 잃지 않는 이야기
  • 등록 2015-10-15 오전 6:17:00

    수정 2015-10-16 오후 6:57:01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의 연출 하상길(왼쪽)과 배우 김혜자는 46년 전 팬과 배우로 처음 만났다. 하상길은 “선생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청년이 백발이 됐다”며 웃었고, 김혜자는 “출연을 고사했는데도 나를 많이 생각해 대본을 고쳤더라. 이제는 잘할 일만 남았다”고 각오를 다졌다(사진=조은컴퍼니).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69년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가 끝난 뒤에도 한 20대 청년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괴물이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괴물은 배우 김혜자였다. 이후 청년은 김혜자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녀가 나오는 연극을 모두 따라다닌 것은 물론 청년 또한 그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청년이 연극배우로 자리잡아갈 때 즈음 김혜자는 무대를 떠났다. 꽤 오랜 기간 TV와 영화에서만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극단 로뎀의 대표이자 연출가 하상길(67)과 배우 김혜자(74)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극단 대표가 되고 난 후 하 연출은 김혜자를 직접 찾아가 연극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했다. 긴 설득 끝에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1991)와 ‘셜리 발렌타인’(2001)을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하 연출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공연 당시 선생이 입었던 의상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며 “당시 이순 역을 맡았는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김혜자는 “그 학생이 하 연출이란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며 “너무 좋게 얘기해줘 사실 멋쩍고 무안하다”고 했다.

△‘국민배우’와 극단로뎀의 세 번째 만남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11월 4일~12월 20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은 김혜자와 극단 로뎀이 호흡을 맞춘 세 번째 작품이다. 김혜자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소정 역을 맡았다. 남편 ‘서진’, 마을아저씨 ‘중길’, 딸 ‘고은’의 회상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 인물이다.

작품은 낙원이 없어도 낙원처럼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세상을 향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부상을 당해 축구선수를 그만둬야 했던 서진에게 소정은 카메라를 선물한다. 꽃을 찍는 사진작가가 된 서진은 소정과 함께 조용한 시골서 새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착하게만 살아온 이들 부부에게 어느날 불치병이 찾아온다.

하 연출은 처음부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극본을 썼다. 극 중 소정의 딸 이름인 고은은 실제 김혜자의 딸 이름이기도 하다. 하 연출은 “어른이 만드는 환상적인 동화”라며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말없이 동행의 손을 꼭 잡을 수 있는 힐링연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 연극 안 하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김혜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1963년 KBS 탤런트 1기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 ‘엄마의 바다’(1993), 영화 ‘마더’(2009) 등 수십편에 출연해왔다. 올해로 데뷔 52년 차지만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로 임한다. 김혜자는 “교과서로 하는 공부는 싫은데 연극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며 “어제 몰랐던 걸 오늘 알게 되고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배운다”고 말했다.

지난해 1인11역을 소화했던 모노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이후 1년 3개월 만에 복귀하는 무대다. ‘온몸을 다 바쳤던 터라 나이도 있고’ 이제 연극은 그만해야지 생각했단다. ‘길 떠나기 좋은 날’도 몇번의 고사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이번 작품은 포근한 엄마와 꿈꾸는 소녀 같은 면이 모두 필요하다. 두 모습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혜자는 하 연출을 비롯해 많은 후배가 존경하는 대선배다. 특히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 연출은 “선생은 작품을 하는 동안 정말 아무도 안 만난다”며 “이렇게 한 작품에 몰입하는 배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혜자도 “한 가지 일밖에는 못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며 웃었다.

작품을 고를 땐 작품이 미칠 영향을 판단한다. “내 연기를 통해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인 관객이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아무리 재밌어도 ‘저걸 왜 봤을까’라고 한다면 난처한 일 아닌가. 이번 작품은 추상적이지만 아름답다. 이 시대에 한 편쯤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연극이다.”

연출가 하상길(왼쪽)과 배우 김혜자(사진=조은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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