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한국거래소가 지난 5월 공시제도 건전화를 위한 개선안을 내놓았음에도 오히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건수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둔화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시 관리 역량이 떨어지거나 증시 급락으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늘면서 불성시공시법인 굴레를 쓰게 되는 기업이 증가한 것이다.
5일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된 건수(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합계)는 총 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4건이었던 것에 비해 더욱 늘어났다. 월별로 보면 공시제도 개선안이 시행된 이후 △5월 11건 △6월 13건 △7월 15건을 기록, 올해 개선안이 시행되기 이전 한 달 평균인 11건을 넘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장사들이 주요 경영사항을 공시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거나, 공시 번복이나 잘못 공시하는 등의 경우가 생기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제재금과 벌점, 매매거래정지, 관리종목지정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특히 지난해 4월 개정안에 따라 기존 ‘2년간 누적 벌점이 30점’일 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지정되던 것이 ‘1년간 누적 벌점 15점’으로 강화되기도 했다.
이렇듯 공시는 상장사에게 있어 중요한 사안이지만, 거듭해서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되는 기업들의 사례들도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레드로버(060300)는 올해에만 3회 지정돼 누적 벌점이 9점을 기록했으며, 이에스브이(223310), 스튜디오썸머(008800) 등도 2회 거듭 지정되기도 했다.
보통 경기가 나빠지면 불공정공시 사례도 늘어나게 된다. 경기 둔화에 따라 회사의 사정도 나빠져 공시 역량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유가증권시장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많이 있는 코스닥 시장의 경우 경기둔화의 여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증시 급락도 불성실공시법인 주요 이유로 꼽힌다. 유상증자 취소나 전환사채(CB) 발행 철회 등 자본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자금조달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경기가 둔화되면 한계기업들도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인력을 감축하거나 제때 공시에 대응할 수 없는 등의 상황이 발생해 불성실공시의 건수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자 보호’가 가장 큰 목적인 공시제도의 특성상 경기 둔화 등을 고려해 기준을 낮추거나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경기 둔화에 맞춰 기준을 낮추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에 맞춰 공시를 관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