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40여년 만에 일본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다. 1988년 일본은 전 세계 부의 16%를 차지했고, 1989년에는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10대 기업 중 7곳이 일본 기업이었다. 1990년에는 총자산 기준 세계 5대 은행이 전부 일본 은행이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작은 섬나라가 이뤄낸 경제성장의 궤적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책은 이런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 후 21세기에 어떻게 쇠퇴의 전환점에 서게 됐는지 분석한다. 심지어는 현재 아베 정부의 시기가 일본의 마지막 최정점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 국제전략분석가인 저자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유명 정치인부터 평범한 대학생까지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관찰해온 일본의 문제점을 짚었다.
버블 붕괴 후 오랜 후유증에 시달린 일본은 2000년대 경기 회복의 희망을 보지만 얼마 되지 않아 2008년 리먼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파에 직면한다.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닛케이지수는 폭락했고, 은행들은 휘청댔다.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돼 도산 기업이 속출했으며, 세계 불황의 여파로 수출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 와중에 2010년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에서 민주당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차지했던 독보적 자리도 중국에 빼앗겼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센카쿠 인근 해상에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면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중국에 일본이 무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은 일본인들을 큰 충격에 빠지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년 후 발생한 진도 9.3 규모의 동일본대지진과 지진해일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며 최악의 원전사고를 일으킨다. 엄청난 경제적 피해는 둘째치고 국민의 심리적 상처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일본이라는 ‘안전 신화’를 완전히 해체한다. 결국 민주당은 3년 만에 자멸하고 2012년 아베 총리가 등장한다.
반일과 친일의 문제를 넘어 일본의 쇠퇴와 원인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일본과 한국은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적 원인이 여러모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책은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구(IMF)가 한국에 생산적이지 못한 기업을 떨쳐내지 못하면 일본처럼 ‘좀비기업’ 퇴출을 거부한 대가로 큰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도 흘려들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