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남 김 작가는 “백석은 자신에게 소중한 시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시 쓰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백석이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오지로 쫓겨났을 때 나이가 46세였다”며 “2016년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나니 명예와 신념 둘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백석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됐다”고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백석은 가무락조개·나줏손·귀신불처럼 스쳐 지나갈 만한 단어들을 섬세히 담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1956년 북한 공산당이 체제를 강화하던 시기에는 선전을 위한 직설적인 단어와 시만 허용됐다. 음식 이름, 옛 지명, 사투리 등의 단어는 사라지고 있었다. 책은 그런 상황에서 백석이 시인으로서 느꼈던 책임감을 전한다. 백석은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평화를, 회복을 생각할 수 없듯 시인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라 말한다.
백석은 체제에 굴복할 것인지 자신의 신념을 지킬지 고민했지만 그는 특수한 상황의 피해자가 아니다. 김 작가는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일반적 경험”이라며 “선뜻 결정하기 힘든 갈림길에서 백석은 자신의 선택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라고 설명한다.
중년에 이른 김 작가는 백석이 쓴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에도 놀라움을 표현했다. 시는 실패에 가까웠던 백석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시인으로서 무명에 가까웠고, 아내와 이혼하고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채 낯선 객지에서 살아갔다. 시의 초반에는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코로나19 시대에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작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한다. 김 작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도 생명의 의지만은 남아 꿈틀대는 것을 보며 일종의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 사회도 전염병의 시대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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