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개방한 구역은 북악스카이웨이의 한양도성 녹지구간이다. 개방 후 해당 구간은 1일 평균 1500명이 찾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재숙 문화재 청장은 지난 6일 취재진과 함께 북악산 북측면 산행을 하며 특히 곡장 전망대로 향하는 한양도성 옆길에 주목했다. 이곳은 뛰어난 자연경관 외에도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의 축성 시기별 차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홍성규 북한도성 해설사는 “청운대 쉼터에서 곡장 전망대에 이르는 300m 구간은 한양도성 전체 18km 중 축조 시기별 차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됐다.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간) 성의 역할을 했다. 한양도성은 태조 때 축성된 후 세종, 숙종, 순조 때 각각 대규모 보수·관리 공사를 통해 그 모습을 유지해 왔다. 도성의 성돌은 시대별 특징이 뚜렷해 축성 시기와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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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어진 성은 세종에 이르러 처음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세종은 1422년 토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모두 석성으로 고쳐 쌓고자 했다. 홍 해설사는 “당시 중국 명나라 사신이 조선으로 넘어오는 통로가 경복궁 북쪽 홍제동의 무학제였다”며 “그곳이 토성으로 돼 있는 걸 보면 세종의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은 성의 견고함을 강화하기 위해 바닥에 큰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 올리고, 그 위로는 둥글고 작은 돌을 마치 매주 쌓듯이 쌓아 올렸다. 조선 8도에서 장정 32만 2400여명이 동원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개방을 통해 2012년 추진했던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길이 뚫리면서 도성의 생활 부분이 더 강화됐다”며 “북한산성과 방어기능을 같이 묶어서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신청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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