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中 세계화 이끈 골드만 삭스 CEO의 설득법

중국과 협상하기
헨리 M 폴슨 주니어│616쪽│열린책들
  • 등록 2020-09-09 오전 6:00:00

    수정 2020-09-09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관시’(關係·관계)다. 법률이 아닌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 중국에서 사업 등에 유리한 인간관계를 통칭하는 중국의 문화다. 중국의 독특한 문화를 모른 채 실무자 몇몇의 승인을 믿고 사업을 진행하다 실패를 맛보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요직에 있는 한 명의 관료가 거래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의 최고 경영자(1999~2006)이자 미국의 74대 재무 장관(2006~2009)을 지낸 헨리 M. 폴슨 주니어가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을 상대했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다. 폴슨은 25년간 100여 차례 중국을 오가면서 국영 기업의 기업공개를 주도하며 중국 경제를 세계 무대로 끌어올렸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장쩌민, 주룽지, 후진타오, 시진핑까지 중국 지도자와 각별한 관계를 이어갔다.

폴슨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탄탄한 인맥을 꼽는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업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특히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중국 정재계 최고위 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폴슨은 중요한 고객을 위해선 어렵고 이익이 되지 않는 부탁에도 기꺼이 응했다. ‘광둥 엔터프라이즈 구조조정’처럼 전혀 사업성이 없어 보였던 일들도 나중에는 큰 보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칭화대학교 경제관리학원의 개혁 건도 마찬가지였다. 폴슨은 주룽지로부터 칭화대(90년간 중국 엘리트의 산실이었고, 주룽지, 후진타오, 시진핑이 이 대학 출신이다)의 경제관리학원 개혁에 힘을 보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중국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준에 맞는 전문 관리자를 필요로 했다. 폴슨은 그 일이 금융이나 구조조정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음에도 상당한 열정을 쏟았다. 폴슨은 이 일을 통해 후진타오를 비롯해 칭화대학교에 헌신적이라고 소문난 졸업생들과도 인맥을 확장할 수 있었다.

또 폴슨은 중국은 신호와 상징을 중시하는 나라이고 이를 잘 이용해야 된다고도 조언한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해 국제 사회가 중국 여행을 꺼려할 때, 폴슨은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텅 빈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사업 미팅이 목적이었지만, 사스 이후 중국을 방문한 서방 최초의 최고 경영자로 중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덕분에 중국은 자국이 정상을 되찾은 안전한 나라임을 홍보할 수 있었고, 폴슨은 국빈관의 스위트룸에 머물며 중국 정부로부터 후한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가 미국 재무장관으로 후진타오 주석과 면담하기에 앞서 칭하이성(靑海省)을 방문한 것도 상징적인 제스처였다. 칭하이성의 메말라가는 칭하이호는 폴슨 자신이 관심을 쏟는 환경 문제를 잘 보여주는 곳이었고, 동시에 후진타오 주석이 과거 당서기로 지내며 애착을 보였던 지역이었다. 그는 호수 주변의 맥주 캔을 납작하게 만들어 수습했는데, 8개월 뒤 폴슨을 만난 원자바오 총리는 돌연 “중국을 걱정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라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폴슨은 40년 전에는 대다수 미국인이 중국에 한 푼이라도 빚을 질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썼다. 이제 중국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자가 되었으며, 미국 정부는 중국에 1조 3000억 달러에 가까운 부채를 안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해 무역전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 협상 테이블에서 체제와 이념은 옆으로 치우고 공동의 전략적 이해관계에만 집중했던 폴슨식 실용주의가 중국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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