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 속에서 지금보다 유교의 예를 강조했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역병이 돌면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공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최근 760종의 소장 일기자료 중 역병 당시의 기록을 담은 일기 일부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경북 예천에 살던 초간 권문해는 1582년 2월 15일 쓴 ‘초간일기’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자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며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썼다. 이틀 뒤 작성한 일기에는 “증손자가 홍역에 걸려 아파하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 역시 1609년 5월 5일자 ‘계암일록’에서 “역병 때문에 단오 차례를 중단했다”고 했다. 앞서 5월 1일 일기에는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고 적었다.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1798년 8월 14일자 ‘하와일록’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기록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은 1851년 3월 5일자 ‘일록’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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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추석과 같은 명절도 음식을 만들지 않고 일상보다 더 조용히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제례를 상당히 중시 여겼던 과거 역병이 돌아 차례를 생략하게 되면 산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건 예에 어긋났다”며 “차례를 안 지내는 만큼 조용히 명절을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조상 제례의 행동 양식보다 본질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유교적 가르침이나 행동양식에도 형식과 정신이 있다”며 “형식을 따르는 게 올바르다는 강박이 있는데 조상을 숭배하는 핵심을 알고 융통성 있게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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