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전쟁 70년,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고백하는 사람들

국세정치와 정치 중심의 전쟁 해석 벗어나
당대 주민에게 듣는 전쟁 본 모습
"어둡기만 한 전쟁에서 생명의 의지를 엿보기도"
  • 등록 2020-06-24 오전 6:00:00

    수정 2020-06-24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분단의 현실 속에 한반도 평화라는 중요한 과제를 갖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단순히 역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올해,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한국전쟁을 당대를 살았던 남·북한 주민들의 육성을 통해 생생히 전달하는 신간들이 발간됐다. ‘고백하는 사람들’(푸른역사)과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역사만들기)이다. 해방 이후부터 분단과정, 전쟁사에 대해 지금껏 국제정세와 국내 정치에 대해서만 해석이 집중돼 있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들은 의미가 있다. 또 ‘1950’(서울셀렉션)은 전쟁이라는 어두운 시대상에도 무심하게 일상을 소화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지를 전한다.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과 북한이 차례로 점령하며 다른 곳보다 일찍, 오래 전쟁을 겪는다.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는 인천 옹진군 주민 104명의 한국전쟁 전후 10년간의 기억을 엮었다. “군인보다 우리가 더 죽었어. 군인들은 싸우다 죽는다지만 우리는 맨몸에 밥 가지고 가다 많이 죽었어요”라는 말에서 전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전쟁 당시 옹진 지역 주민들의 의용군 강제징집과 상륙작전, 수복 과정의 피해, 이후 부역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의 죽음, 군사작전에 동원된 청년들의 죽음 등 전쟁 중 민간인들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숱한 아픔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구체적 상황들은 공식적인 역사서술과 국방부 기록에 존재하는 공식 서술을 뒤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고백하는 사람들’은 광복직후부터 전쟁 전까지 북한 사회를 담았다. 당시의 북한 교수· 학생·간부·노동당원·군인 등 879인이 생존 혹은 출세를 위해 북한 당국에 제출한 자술서·이력서에는 진솔한 북한의 모습이 있다. 해방 직후 북한에 불어 닥친 러시아어 열풍에 대학생·지식인이 멋들어진 러시아어 성명을 쓰는 모습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상상하게 한다. 반면 소련군이 황해도에 진주했을 때 주민들에게 사이렌을 울리며 피신을 유도하고 재산과 부녀자들을 잘 지키라고 경고하는 모습은 북한이 소련군을 우호적으로 생각했을 거라는 우리의 일반적 시각과 다르다.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상반된 평가도 있다. 토지를 분여받은 빈민층은 “황해도 재령군의 머슴 출신 오남제는 토지개혁으로 논 800여 평을 받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첫 수확 후 가장 먼저 현물세로 쌀 네 가마니를 기부하고 ‘애국미’ 여섯 가마니를 추가로 헌납했다”고 환호하며 적극 지지하는 한편 공직자와 간부는 “한 닢, 두 닢 모아 사들인 땅 3000평을 몰수당해 부모는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다”며 넌지시 불만을 내비쳤다.

개전부터 휴전까지 한국전쟁을 곁에서 본 종군기자 존 리치가 담은 한국전쟁 컬러사진 속에는 피난길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1950’은 그동안 전해진 빛바랜 흑백 사진 속 한국전쟁의 참상과 침울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담았다. 남대문, 서울역 등 익숙한 풍경을 배경으로 물건을 나르거나 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삶의 희망과 의지를 뿜어낸다. 작가는 “이 사진을 보는 독자들이 한국전쟁을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지 않고 겪었던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 강인한 소생의 의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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