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사건 '무죄' 나왔다…"예측불가 사고까진 처벌 못해"

대구지법 서부지원, 원청 대표이사 등 전원 무죄
"작업표준 없는 수공구 사용…원청이 예측불가"
"사업장별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중요"
  • 등록 2024-12-22 오전 11:28:09

    수정 2024-12-22 오전 11:43:4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보기 드문 무죄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기업이 사업장 특성에 따른 안전관리 체계를 갖췄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까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향후 중대재해법 적용의 새로운 기준이 될 전망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5형사단독 김희영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대표 A씨(64)와 회사 법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청업체 대표와 외국인 근로자도 함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은 2022년 2월 9일 대구 달성군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발생했다.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53·여)가 압축성형기에서 튕겨나온 플라스틱 공구(일명 지그)에 머리를 부딪혔고, 한 달여 간의 치료 끝에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검찰은 원청 업체가 안전보건 전담조직 설치,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업무절차 마련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대표이사와 법인을 기소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법무법인 율촌의 이승호(사진·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는 지난 2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하청업체 직원이 작업표준에 없는 수공구를 사용하다가 발생한 사고였다”며 “법원은 원청 회사가 이러한 수공구 사용 사실을 알았는지, 그리고 수공구가 튕겨나와 사망에 이르는 이례적인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봤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법 적용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책임자가 사업장별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를 마련했다면, 합리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법원이 형사법의 일반 원칙을 엄격히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산업현장의 사망사고에 대해 제도적 지원이나 민사·행정상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며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고의나 예견가능성, 인과관계가 엄격하게 입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기업들의 안전관리 실무와 관련해 “기업들은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확인 및 개선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향후 항소심에서도 수공구 사용에 대한 원청의 인식과 사고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변호사는 중대재해법 개선 방향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합당한 경영상 조치를 다했음에도 발생하는 현장에서의 구체적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면책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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