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퀴어'SF' 다양성에 펜을 든 젋은 작가들

언니밖에 없네·팬데믹
큐큐·문학과 지성사│252쪽·196쪽│김지연 외·김초엽 외
  • 등록 2020-10-07 오전 6:00:00

    수정 2020-10-07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저는요. 소문내고 싶어요. 우동을 먹어도 소문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에요.…근데 저희가 잔치를 열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디 광고할 것도 아니고요. 그냥 거짓말 안 하고 살겠다는 거예요.’(‘언니밖에 없네’)

‘고래는 우리가 필요 없었어요. 그냥 견딜 만한 작은 기생충에 불과했지요.’(‘팬데믹’)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이 변하고 있다.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아왔던 ‘퀴어문학’과 소수 마니아만 소비하던 ‘SF’ 등이 약진하며 문학의 다양성이 한층 넓어지고 있다. 성소수자를 이르는 ‘퀴어’의 미래를 그린 단편집 ‘언니밖에 없네’(큐큐)와 ‘전염병’을 테마로 한 SF 단편집 ‘팬데믹’(문학과 지성사)이 잇달아 출간되며 이를 방증하고 있다. 문단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각각 7명(김지연·정세랑·정소연·조우리·조해진·천희란·한정현), 6명(김초엽·듀나·정소연·김이환·배명훈·이종산)이 두 책을 위해 펜을 들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의 글에서는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신인류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는 평이다.

여성작가로만 구성된 ‘언니밖에 없네’에서 저자들은 퀴어라고 부르는 삶의 모습들에서 미래로 한발 더 나아갔다. 성별이 사라지고 인터섹스가 보편화 된 세상을 그린 정세랑의 ‘아미 오브 퀴어’와 항성 간 이주가 가능한 세계를 상상한 정소연 ‘깃발’이 대표적이다. 인터섹스로 태어난 세명의 주인공은 성별이 있었던 근대 시대로 돌아가려는 세력에 대항해 250여년 만에 ‘퀴어 전쟁’에 나선다. 서로 다른 항성에 살아가는 이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분투를 한다. 이 외에도 다채로운 색깔을 드러내는 주인공들이 각각 소설 속에 등장해 어떤 형태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꿈꾼다.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정세랑은 저자의 말에서 “아직 오지 않은 세계에 대해 쓰면 그 세계가 오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 실패를 알면서도 나아가는 이야기 속 친구들처럼 끝내는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고 전했다 .

‘팬데믹’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전 세계에 다가온 급작스러운 변화에 상상력을 더했다.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 서로를 만날 수 없다는 고립감 등에서 영감을 얻은 저자들은 각각 ‘멸망’, ‘전염’, ‘뉴 노멀’을 주제로 글을 써내려 갔다.

김초엽과 듀나는 각각 ‘최후의 라이오니’와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에서 팬데믹 상황에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새 터전을 찾는 이들의 모험을 담았다. 한 편에서는 자료와 자원을 채취하는 ‘로몬족’이 멸망한 문명을 탐사해 거주할 곳을 탐색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공전과 자전 주기가 같은 낯선 행성에서 바다 위 섬처럼 뜬 고래 등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펼쳐진다.

뉴 노멀을 주제로는 비대면이 일상화된 사회의 새로운 ‘연결’을 다뤘다. 이종산의 ‘벌레 폭풍’에서는 난데없는 벌레 떼에 바깥 세상이 점령된 세계가 등장한다. 실내에서 노동과 생활을 모두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 사람과의 접촉은 제한된다. 목각인형 제작이 직업인 주인공도 30년간 타인과 접촉을 극도로 피해왔지만 애인과 결혼을 하러 바깥 세상을 뚫고 나간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질서와 다시 안정을 찾으려는 모색은 계속되고 있다. ‘팬데믹’에 담긴 6편의 단편은 이와 함께 낯선 시스템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갈 관계와 삶에 대해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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