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원래 보석이었다…끊임없는 유리 변신[생활속산업이야기]

46)라틴어 ‘글래숨(glaesum)'에서 유래 '호박'
빛 투과 특성에 건축 특별한 재료로 사용돼
고딕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산업혁명 후 '쇼윈도'
커튼월공법, 로이유리, 태양광 패널, 스마트 글라스까지
  • 등록 2024-11-23 오전 9:00:00

    수정 2024-11-23 오전 9:00:00

“아 그랬구나!” 일상 곳곳에서 우리 삶을 지탱해 주지만 무심코 지나쳐 잘 모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침구, 종이, 페인트, 유리, 농기계(농업) 등등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곁에 스며 있지만 숨겨진 ‘생활 속 산업 이야기’(생산이)를 전합니다. 각 섹터별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생산이’를 들려줍니다. <편집자주>

[김태현 KCC글라스 설계·기술판촉팀장] 유리를 뜻하는 영어 ‘글래스(glass)’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글래숨(glaesum)’으로 이는 보석 중 하나인 ‘호박(amber)’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유리지만, 고대에는 유리가 귀한 보석으로 여겨져 장신구로서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KCC글라스 더블로이유리가 적용된 경기 화성시 ‘동탄 레이크원’ (사진=KCC글라스)
유리가 정확히 언제 처음 세상에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Plinius)가 쓴 ‘박물지(natural history)’에서는 유리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어느 날 페니키아의 천연소다 무역상이 이동 중 식사를 준비하려다 솥을 받쳐놓을 마땅한 돌을 찾지 못해 가지고 있던 소다 덩어리 위에 솥을 얹고 불을 지폈는데, 불에 녹은 소다 덩어리가 모래와 혼합되자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고 이 투명한 액체가 바로 유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유리 조각과 유리 막대기가 발굴되면서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이미 유리를 제조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도 유리 제조 과정이 기록돼 있어 비슷한 시기 이집트에서도 유리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유리는 오늘날의 투명한 유리와는 달리 불투명하고 다양한 색상을 띠고 있었다.

유리는 빛을 투과시키는 특성 덕분에 건축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특별한 재료로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예로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들 수 있다. 유리에 철분과 같은 불순물이 포함되면 녹색 등 특정 색상을 띠게 되는데, 중세 시대에는 투명한 유리를 제작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불순물이 섞여 다양한 색을 띤 작은 유리 조각들을 밀랍으로 붙여 유리창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의 시작이다.

KCC글라스 더블로이유리가 적용된 서울 서초구 ‘gt타워’ (사진=KCC글라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 투명한 유리가 보급되면서 유리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유리는 여전히 귀한 건축 자재로, 주로 부유한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696년 영국에서는 창문의 개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창문세(window tax)’를 도입하기도 했다. 유리창이 많을수록 부유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유리가 건축물의 창문에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다. 산업화로 인해 대량 생산된 상품들을 효율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상점들은 가게 내부의 물건이 잘 보이도록 1층 벽면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행인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쇼윈도(show window)’다.

현대에 들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유리는 건축 분야에서 더욱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1900년대 초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독일의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등 현대 건축의 선구자들이 콘크리트, 철과 함께 유리를 건축 외장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면서 건물 외벽 전체를 유리로 감싸는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창문 외에 난간에도 강화유리가 널리 적용되는 추세다.

KCC글라스 더블로이유리가 적용된 서울 영등포구 ‘서울국제금융센터’ (사진=KCC글라스)
특히 전 세계적인 기후 온난화 대응 및 에너지 절감 추세에 발맞추어 고단열 코팅유리인 ‘로이유리’의 사용이 건축 시장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로이유리의 ‘로이(low-e)’는 ‘낮은 방사율(low emissivity)’의 약자로, 방사율이 낮아 원적외선을 반사하는 특성을 일컫는다. 유리 안쪽 면에 얇은 금속과 세라믹 박막을 여러 겹으로 코팅해 난방열의 외부 유출을 막고 에너지 절감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로이유리는 코팅 횟수에 따라 ‘싱글로이(single low-e)유리’와 ‘더블로이(double low-e)유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더블로이유리는 싱글로이유리와 비교해 단열 성능이 훨씬 뛰어나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주로 고급 상업용 건축물에만 사용돼 왔다. 그러다 필자가 몸담은 KCC글라스가 2018년 국내 최초로 주거용 비강화 더블로이유리를 출시하면서 아파트 등 일반 주거용 건축물에도 더블로이유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열처리 강화 공정을 생략해 가격을 낮추면서도 더블로이유리 특유의 우수한 단열 성능을 유지한다.

KCC글라스는 2022년 세계 최고 수준의 단열 성능을 갖춘 더블로이유리 제품인 ‘컬리넌(CULLINAN)’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제품은 26mm 복층유리 기준 열관류율이 0.97W/㎡K로, 전 세계에 현존하는 더블로이유리 중 최고의 수준의 단열 성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친환경 스마트 건축물에 대한 니즈가 증가함에 따라 태양광 발전 기판을 내장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용 유리나, 버튼 동작만으로 간편하게 유리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글라스, 새들의 유리 부딪힘을 방지하는 조류안전유리와 같은 최첨단, 친환경 기술이 접목된 유리 제품들이 지속해서 개발되면서 미래 건축 환경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고 있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휴대전화의 디자인과 기능을 혁신적으로 바꿨듯, 건축용 유리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 따라 앞으로도 유리가 건축 분야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KCC글라스 설계·기술판촉팀장 (그래픽=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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