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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국내 로봇산업의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시종일관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정책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로봇산업 정책은 근시안적이 아닌, 긴 호흡으로 가야 하죠.”
손웅희(60)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국내 로봇산업 도약을 위해선 일관된 정부의 정책 지원을 기반으로 민·관이 함께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로봇산업진흥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2010년 6월 출범했다. 지능형 로봇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사업과 정책 개발을 추진 중이다. 손 원장은 한양대 메카트로닉스 공학박사 출신으로 로봇 분야에 약 30년간 몸담아 온 전문가다.
그는 “내가 카이스트(KAIST)에서 4족 보행 로봇을 연구했던 1980년대 후반만 해도 (현재 이족보행 로봇으로 가장 유명한) 미국 보스톤다이내믹스와 우리 로봇 기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정부가 로봇산업에 대한 기술개발지원을 줄이면서 격차가 나기 시작하더라. 정책의 일관성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로봇산업을 단기가 아닌 장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꾸준한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로봇산업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여전히 생태계 전반에서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손 원장은 “아직 국내 로봇부품 국산화율이 5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우리 로봇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부품 국산화율이 더딘 거다. 정부에선 국내 로봇기업들이 다양한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민간에서도 공용 부품 플랫폼을 만드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로봇을 활용하는 나라다
-최근 부상 중인 서비스 로봇 산업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정부에선 돌봄, 웨어러블, 의료, 물류로봇을 4대 서비스 로봇 분야로 선정해 로봇 개발과 실증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제조 로봇 분야는 기술력 있는 미국, 일본, 독일과 저가로 승부를 보는 중국 사이에 껴 있다. 전 세계가 서비스 로봇에 있어선 시작 단계인데, 우리가 이 시장마저 내줘선 안 된다. ‘골든타임’이 3년밖에 없다고 본다. 서비스 로봇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우리 로봇산업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서비스 로봇은 B2B(기업간거래), B2G(기업·정부간거래) 중심인데, 공공분야에서 많이 활용하지 않으면 보급이 힘들다. 우리가 실증을 지원하는 이유다.
-로봇 분야 규제개선 방향성은
△정부가 지난 2월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은 2020년 내놓은 규제혁신 로드맵 1.0에 이은 2.0 버전 격이다. 로드맵 1.0에서는 협동로봇 펜스 설치 의무화, 배송로봇 엘리베이터 이용금지 등 규제 9건을 개선했다. 1.0이 로봇산업에 대한 방향 설정이었다면, 2.0은 속도가 중심이다. 3년이란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로드맵 2.0에선 51개 과제 중 내년까지 39개 규제를 개선하고자 한다. 주요 규제개선 분야는 모빌리티, 세이프티(안전), 협업·보조, 인프라 등 4개다.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지원하는 규제개선 민관협의체도 구성할 계획이다. 더불어 10년 주기 한시법이었던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 개정안(양금희 의원)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영구법으로 전환됐다. 앞으로 로보티즈(108490) 같은 실외자율배송 로봇업체들이 규제샌드박스가 끝나더라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돼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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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산업에 정책의 중요성은.
△과거 정부가 돈을 많이 들여 다양한 로봇 기술을 개발했는데 결국 비즈니스(사업화)로 남은 건 별로 없다. 실현 가능성을 넘어 실용 영역으로 넘어와야 하는 게 맞다. 로봇 R&D도 이런 측면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가장 아쉬운 건 정책의 일관성이다. 내가 1980년대 후반 카이스트에서 4족 보행 로봇 연구팀 막내로 있었는데, 그때 미국 보스톤다이내믹스가 우리와 같은 걸 했었다. 그런데 정부가 1990년 이후 로봇산업이 기대보다 커지지 않자 과학기술처 특정연구사업(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지원사업) 지원을 끊더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 셈이다. 이후 보스톤다이내믹스는 계속 연구를 진행하며 구글, 소프트뱅크, 현대차그룹 품에 안기면서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을 했다. 너무 아쉽다. 정부가 시종일관 로봇을 큰 사업으로 끌고 왔다면 지금 다른 양상이 됐을 거다. 과거 정부는 항상 급했고, 정권이 바뀌면 예전 것들을 다 무시하고 새롭게 도배한다. 정치는 사람의 표를 먹고 살지만, 산업은 미래를 먹고 산다. 로봇산업 미래를 위해 정책도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향후 로봇산업 지원을 위한 진흥원의 계획은
△우선 대통령께서 6대 산업 분야 육성전략 분야에 로봇을 포함시키면서 규제개선 등에 긍정적인 분위기다. 정부는 지능형 로봇법에 근거해 5년마다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진흥원도 내년까지 4차 계획 수립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재 예비타당성 평가 중인데 하반기엔 심의가 끝날 듯하다. 현재 우리 로봇기업들은 실증할 곳이 없어 절실하다. 매번 규제샌드박스만 하다가 우리 로봇시장 중국에 다 뺏길 수도 있다.
손웅희 원장은...
△1963년(서울) 출생 △한양대 메카트로닉스 공학박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융합과학기술위원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조정 민간위원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소장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래산업전략본부장 △한양대 겸임교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융합기술연구소장 △한국로봇산업협회 감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부원장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