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예보유자는 경기민요 종목의 초대 보유자였던 고(故) 묵계월(본명 이경옥), 고(故) 안비취(본명 안복식) 선생과 함께 ‘경기민요 3인방’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명예보유자의 별세로 경기민요 초대 보유자 3인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고인은 원경태 선생에게 경·서도소리, 가사, 시조, 잡가 등을 배우며 소릿길에 입문했다. 1939년 KBS 전신인 경성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으로 데뷔했다.
인천 흥명극장 팔도명창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고, 한국 전쟁 중 일제강점기 때 불리다 잊힌 ‘태평가’를 복원해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고인은 1962년부터 한국민요연구회 초대 이사 겸 부회장, 한국국악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민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한편 경기민요는 조선 후기에 널리 향유되던 잡가를 20세기 초 서울이나 평양의 근대 도시적 분위기에 맞춰 세련되게 만든 새로운 노래 양식 전체를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이다.
하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경기좌창’이라 불리는 ‘경기긴잡가’ 12곡이다.
경기긴잡가는 경기 특유의 율조로 대개 서경적 혹은 서정적인 긴사설로 비교적 조용하고 은근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서정적인 표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고인의 유족은 딸 최순희씨 등 2녀가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지하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5일 오전 6시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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