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범죄피해자가 국가로부터 구조금을 받거나 가해자가 구상금을 낸 사실을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인 ‘피해회복’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 감형을 우려해 구조금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는 만큼 구체적 양형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2일 오후 대법원 1층 강당에서 ‘피해자와 양형’을 주제로 제13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 백주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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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2일 대법원 강당에서 ‘피해자와 양형’을 주제로 제13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범죄피해자구조금 사례를 중심으로 한 피해 회복과 양형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범죄피해구조금은 범죄로 사망한 사람 유족이나 장해·중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가해자를 대신해 지급하는 보상금이다. 검찰청이 운영하는 범죄피해구조심의회가 지급을 결정하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통해 마련된 재원에서 지급한다.
문제는 피해자의 범죄피해구조금 수령과 가해자의 구조금 변제 여부가 양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유족구조금 지급’을 언급한 1·2심 판결문 53건 중 37건(약 70%)이 이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최준혁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피해 전보를 받기 어려운 경우 국가는 국민의 공평부담으로 구조할 필요가 있는 만큼 구조금청구권은 생존권적 성격을 띠는 청구권”이라며 “해당 기준이 양형기준에 인자로 명시돼 있지 않은 만큼 이를 처벌불원 또는 피해회복으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유족구조금은 헌법과 관련 법령에 따라 피해자 유족에게 주어지는 권리이고 권리 행사인데 그게 가해자의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된다는 건 모순점이 있는 것 같다”며 “양형실무연구회 등을 개최해서 적절한 의견을 제시할까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금 지급과 피해회복은 구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배상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에게 유족구조금을 지급한 후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했기에 피고인이 강제 변제한 금전을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으로 보는 것은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설명했다.
조미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금 수령은 국가가 국민 보호 책임을 이행한 것으로 피해자 손해를 분담한다는 측면에서 가해자의 피해회복과 손해배상과는 구별된다”고 짚었다. 가해자의 구상금 납부는 구조금 지급 후 일어나는 일인 만큼 유리한 양형요소인 피해회복으로 평가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