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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잡으려던 무역확장법232조, 한국까지 ‘불똥’
28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누코르와 아르셀로미탈 USA, US스틸 등 미국 25개 철강업체와 미국 철강협회(ASIS) 임원들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통해 수입 철강에 대한 제한을 펼쳐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지난 6월 미국 시장에서 수입철강이 30%를 차지하며 2년여 만에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최근 연기한 ‘수입산 철강제품의 안보위협(이하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발표를 재개해달라는 요청으로 풀이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1962년 제정됐으며,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를 허용하는 법이다.
당초 이번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최대 무역수지 적자국인 중국(지난해 기준 미국의 수입금액 4628억달러)을 견제·압박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하지만 관련업계는 미국이 대(對)중국 수입규제를 강화할수록 한국이 입을 수 있는 피해 역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한국 수입금액은 699억달러로 중국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최근 개시된 미국의 반덤핑 조사 건수는 중국이 16건이며 한국은 12건에 달한다.
이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중국과 매우 유사해 일부 품목들의 경우 미국 시장 내 한·중 간 수출경합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수입규제에 따라 중국산 수입이 감소하면 이를 한국 기업들이 대체하게 되고, 결국 다시 한국산에 대한 수입규제로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한 반덤핑 규제 품목 중 약 67%는 중국의 동일한 수출 품목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무역확장법 232조와 관련 가전 또는 석유업체와 같이 값싼 철강제품을 필요로 하는 엔드유저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으며, 반대로 중국 및 한국 업체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미국 철강사들은 이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트럼프 정부 자체가 소위 ‘로스트벨트’로 불리는 철강도시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 힘이 실리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FTA 재협상, 직접 피해 없어도 상징성 부담
미국 정부는 이같은 흐름에 따라 이미 한·미 FTA 재협상을 테이블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철강을 자동차와 함께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국내 철강업계 입장에서 이번 한·미 FTA 재협상이 추진될 경우, 한국산 철강이 미국 산업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반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미 한국산 철강제품들을 대상으로 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에 이어 향후 추가적 수입규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말 기준 미국이 한국을 대상으로 한 수입규제 현황을 살펴보면 반덤핑 21건, 상계관세 7건 등 총 28건 수준이다. 이는 중국 155건, 인도 32건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이에 추가적으로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거나 세이프가드 발동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올해부터 2021년까지 최대 5년간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시 국내 철강업계는 총 11억3000만달러의 수출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최대 4년간 세이프가드 발동시 수출손실은 44억1000만달러로 급증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사실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이를 붙이는 이유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미국이 추진 중인 또다른 보호무역 행보인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과도 맞물려 돌아간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