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적 소설을 뜻하는 오토픽션은 ‘오토바이오그래피(autobiography)’와 소설을 뜻하는 ‘픽션(fiction)’의 합성어다. 자신의 생애나 생활 체험을 소재로 쓴 소설을 일컫는다. 하지만 경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대로 꾸며내도 되고, 삼인칭을 사용해도 된다는 점에서 자서전과는 다르다.
김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 등장한 ‘C누나’의 실제 모델이라고 밝힌 피해자 다이섹슈얼(트위터 계정 이름)은 김 작가가 자신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적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김봉곤 작가와 저를 동시에 아는 사람들은 모두가 작품 속 ‘C누나’가 저임을 알고 있었다”며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써 큰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가 어느 정도 내용을 가공할 것으로 예상을 했기에 작품 등장을 허용했다고도 덧붙였다.
한영인 문학평론가는 이에 대해 “문학 작품에서 이름만 바꿔쓰거나 심지어는 이름도 바꾸지 않고 등장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면서 “문제는 실존 인물의 삶을 소설에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과 의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무단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차용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거지 글자를 그대로 옮긴 것이 비윤리적 창작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
완전한 창작은 없다는 데 문학계는 물론 대부분의 예술계가 동의한다. 작가의 창작과 창의성은 현실세계의 경험에 기반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토픽션’은 작가의 현실 경험을 더욱 적극적으로 작품속으로 끌어들인다. 사실 자전적 소설은 이미 문학계에서 많은 작가들이 쓰고 있는 방식이다. 생생한 경험에 기반한 작품은 독자로부터 강한 몰입도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작가 박완서가 그랬다. 박완서는 자신의 소설이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음을 부정하지 않았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같은 대표적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작가 스스로인 경우가 많았다.
김 작가의 논란을 가중 시킨 데는 퀴어라는 작가의 정체성과 논란 후 미흡했던 작가와 출판사의 대처도 큰 역할을 했다. 결국 문제가 된 김봉곤 작가의 소설이 담긴 책을 출판한 문학동네와 창비는 모든 작품을 회수하고 이미 구매한 독자에게는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또 김 작가는 ‘그런 생활’로 받은 제11회 젊은 작가상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학계에서 창작의 기준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문학 평론가는 “문학이 만들어지고 어디까지가 허구고 사실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었다”며 “표절처럼 사실과 허구의 경계의 정의를 내리긴 힘들지만 비평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