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 박탈" vs "단계적 개선"…대법 공개변론서 법리 다툼

원고 측 "편의점 0.35%만이 접근 가능"
피고 측 "공공시설 편의시설 설치율 향상"
정부 책임 지적한 대법관들 "5%로는 부족"
  • 등록 2024-10-23 오후 4:36:38

    수정 2024-10-23 오후 4:36:38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정부가 24년간 장애인 접근권을 침해했다.”

“공공시설부터 단계적 개선을 추진해왔다.”

대법원이 23일 오후 대법정에서 장애인 접근권 관련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원고 측과 피고 측은 ‘행정입법 부작위의 위법성’ 쟁점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조희대 대법원장(오른쪽 두번째)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차별 구제 소송 쟁점은 국가가 옛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입법자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라 위법한 것인지, 나아가 손해배상 책임까지 성립하는지 여부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정부가 1998년부터 2022년까지 24년간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에서 소규모 소매점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300㎡ 이상 시설로 제한한 것이 위법한지 여부다.

원고 측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전국 편의점의 편의시설 설치율이 0.35%에 불과하고, 26차례 실태조사에서 소규모 시설이 단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일반 시행령 개정에 5~7개월이 걸리는데 이 규정은 24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다녀야 하는 현실은 변함없다”며 “뉴욕이나 도쿄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기본적 일상생활조차 어렵다”고 호소했다.

반면 피고 측 이산해 변호사(정부법무공단)은 “법령상 구체적 자기 의무가 없고, 온라인 구매나 활동보조 등 대체 수단이 있다”며 “소상공인 부담 등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피고 측 참고인으로 의견 진술에 나선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환경정책기획팀장은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편의시설 설치율이 1998년 47.4%에서 2023년 89.2%로 향상됐다”며 정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대법관들은 정부의 책임을 엄중하게 보는 질문을 쏟아냈다. 오경미 대법관은 “교통약자 이동권은 90% 이상 보장하면서 시설 접근권은 5% 미만에 그친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따졌다. 권영준 대법관은 “2022년 개정이 가능했다면 2008년, 2014년, 2017년에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이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했는데, 정부 주장대로 해도 5%대 접근성을 두고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피고 측은 “2018년 이후 개정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19로 지연됐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이숙연 대법관은 “최근의 노력보다는 긴 기간 동안의 미비점을 짚어야 한다”며 1998년부터 2018년까지의 구체적 노력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각계에서 제출한 의견도 공개됐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사회보장법학회,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등은 “시행령 미개정은 장애인 접근권을 침해한 위법”이라는 의견을 냈다. 건축공간연구원은 “물리적 편의시설 의무가 없는 시설에 대한 대체수단이나 인적 서비스 규정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행정부의 입법 재량과 기본권 보장 의무 사이의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사건 선고는 변론 종결 후 2~4개월 내에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전합 공개변론은 2021년 이후 3년만에 진행된 것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첫 전합 공개변론이 이뤄졌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등 관계자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대법원 공개변론 관련 기자회견에서 준엄한 판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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