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수년 전부터 앓아오던 지병이 최근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녹색평론’을 창간했으며 2004년부터는 교직을 그만두고 생태 사상을 전파하고 생태 운동을 확대하는 데 전념해왔다. 2011년에는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지난해 펴낸 저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 근대문명의 폐해와 생태 문명의 당위성을 직설적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이 책에서 “현세대의 인류에게 가장 긴급한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물질적 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라면서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그 농사의 궁극적 토대인 토양을 건강하게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생전 마지막으로 ‘한겨레’에 발표한 칼럼 ‘코로나 환란, 공생의 윤리’에서 “당장의 기술적 해법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 전 인제대 교수와 아들 형수(대학 강사), 딸 정현(녹색평론 편집장)씨, 며느리 도인선(효성중공업 과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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