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백제 왕릉 "실제 지름 20m 넘어…복원된 모습과 달라"

지하물리탐사로 왕릉 배치 및 규모 확인
"백제 후기 능원 모습 밝혀낼 결정적 단서 될 것"
  • 등록 2020-07-15 오후 6:53:15

    수정 2020-07-15 오후 6:53:15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사적 제14호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대한 탐사결과 무덤의 실제 규모가 현재 복원돼 있는 20m가 넘는 대규모 무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대한 6년간의 지하물리탐사 결과 백제 사비기 왕릉의 배치와 규모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지하물리탐사는 전기나 진동 등을 사용해 땅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측정하고 땅속의 구조물이나 매장문화재의 분포를 판단하는 고고과학 기술의 일종이다.

탐사결과 봉분의 외곽에는 호석(무덤의 봉분 외곽에 두르는 돌로 고분의 경계를 나타내고 봉토가 유실되지 않도록 함)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다. 문화재 연구소는 이를 통해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은 현재 복원·정비돼 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됐던 것으로 파악했다.

탐사결과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함께 조성되었거나 가족단위로 무덤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돼 왔다. 특히 고분군의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인 능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바 있다. 능사는 능침사찰의 줄임말로 왕릉 주위에 세운 절로 죽은 왕과 왕족의 명복(冥福)을 비는 역할을 했다.

이 지역에 백제 고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에도 능산(陵山)으로 표시돼 있는 것으로 미뤄 조선 시대에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는 1915년 일본인인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처음 실시했으나 정식보고서도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중 조사된 7호분과 함께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돼 있다.

또 올해 하반기에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국립부여박물관과 업무협약을 해 능산리 고분군 중 동하총(1호분) 내부 관대(棺臺)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어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전체 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런 조사를 통해 고분간의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비기 왕릉의 주인과 백제 후기 능원의 모습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지하물리탐사 모습(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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