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준 전 대사는 14일 “우리는 트럼프의 외교를 이미 4년간 경험했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그 방향이 어디인지는 대략 알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다. 한미 동맹은 그동안 미국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 한국의 정권교체 시기에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미국의 동맹외교 문법을 깨고 안보비용 지출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오 전 대사는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도 방위비 증액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인상 요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최소한 해외 주둔 미군과 관련해 전반적인 비용 대 효과 차원의 재검토가 있을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한 미군의 철수를 막기 위해 무조건 우리의 주둔 비용 추가 부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이분법적 대처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외교에서든 어떤 국가이든 필요하고 아쉬운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윤곽이 드러난 이후에 융통성 있는 대처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예로는 조선 산업을 꼽았다.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국의 조선 산업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오 전 대사는 “조선 분야에 관해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잘나가는 부분이 있으니 협상의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며 “방위비 분담을 늘리더라도 급격한 인상은 한미동맹에 훼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해야 한다. 외교는 협상이기 때문에 항상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한미가 ‘핵공유’ 수준의 동맹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표했다. 한미는 지난 7월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전략자산 전개 빈도와 강도를 높이는데 합의했다.
이어 오 전 대사는 “트럼프가 외교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야 외에 다른 외교 분야에는 관심이 적다”며 “신임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을 잘봐야 한다. 이후 미국의 새로운 외교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2기 중국과 관계회복 기회…“당분간은 관망할 듯”
트럼프 2기에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 전 대사는 “중국과는 경제적인 거래나 인적교류에 있어서 우리의 중요한 우방인만큼 관계 회복 노력의 시도를 해야 한다”며 “북러 관계가 강화된데 따른 반사이익으로 중국과 관계 회복의 여지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외교전략을 공표할 때까지는 한국과 중국 정부 모두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내년 3~4월까지 최소 몇 달은 트럼프 2기의 외교적 우선순위가 분명해질 때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 중국, 러시아 모두 관망으로 들어갈 것”이라며 “트럼프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심지어는 이란하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오 전 대사는 “2018년 최초 북미 정상회담을 복기해보면 트럼프는 북한지도자를 만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고 본다”며 “성과로 과시할 만한 합의가 필요하다. 성과가 없는 만남은 하노이 실패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전념하고 있다. 이에 완전 비핵화보다는 ‘핵군축’ 협상을 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오 전 대사는 “북한은 바이든 정부보다는 트럼프처럼 자신에게 성과로 비쳐질 수 있으면 덥석 받는 상대방과 협상하려 할 것”이라며 “언젠가는 비핵화를 어느 정도 양보하고 경제발전을 해야겠다. 제재를 벗어나야겠다는 계산이라면 트럼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오 전 대사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낸다면 북한이 핵능력을 포기하고라도 제재를 해제하고자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라며 “이 자체 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북미 협상이 재개될 경우에 한국이 협의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오 전 대사는 “6자회담을 끝으로 북한과 협상에서 우리가 낄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며 “미국을 통해서 우리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지 다자 협상으로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과 8.15독트린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을 당장 바꿀 이유는 없다고 했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제재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 전 대사는 “북한에 대한 제재는 2018년부터 본격화됐는데 6년이 지났는데 효과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라며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라는 말이 있다. 제재는 누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면 인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북한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다만 남북 교류를 시작한다 던지, 북한 제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협상을 해야 한다”며 “우리의 대북정책이 현재로서는 북한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담대한 구상은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