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새만금 징비록, 꼭 남겨야 한다

  • 등록 2023-08-11 오전 5:00:00

    수정 2023-08-11 오전 5:00:00

4만 3000여명의 세계 청소년들을 극한의 생존게임 터로 몰아넣었던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오늘 오후 폐막식을 갖는다. 최악의 폭염 속에서 엉망진창의 준비 상태로 시작한 후 조기 중단 위기까지 몰렸다가 정부와 각계의 긴급 지원으로 잠시 안정을 찾았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행사다. 태풍 카눈이 한국을 덮친 탓에 참가자들을 서울 등 수도권으로 조기 철수시키고 프로그램도 문화 체험·산업 시찰 중심으로 대거 바꾸는 등 롤러코스터식 우여곡절을 몇 차례 겪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할 뉴스가 더 없었던 것만 해도 다행이다. 대회를 국제적 망신거리로 만든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유사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곧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새만금의 실패는 시작 전부터 예정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 잠자리·먹거리·볼거리 등 외국 손님을 맞는 세 가지 기본 요건 중 ‘잠자리’부터 아예 정상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땡볕을 피할 수 없는 여의도 3배 크기의 광활한 매립지 벌판을 야영지로 택한 기상천외의 발상에 우선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모기와 물 것이 득실대는 침수지가 사방에 널려 있음을 감안한다면 주최측은 어떤 변명으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생때같은 자식을 이역만리에 보낸 부모들이 발을 구르며 애태웠을 심정을 생각한다면 두고두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일이다. 시차 적응도 힘들었을 청소년들이 폭염과 벌레 물림 속에서 불면의 낮과 밤을 보내며 고통스러워했다면 먹거리·볼거리가 아무리 많고 좋아도 점수는 ‘꽝’이다. “귀하게 자라 불평·불만이 많다”고 입방아를 찧은 염영선 전북도의회 의원의 말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

망신을 부른 원인 중 꼭 짚어야 할 또 하나는 ‘염불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인 지자체와 공무원들의 나랏돈 축내기다. 1조 4000억원의 국고가 투입된 새만금의 동서와 남북 방향 십자형 간선 도로 건설 및 8000억원의 사업비가 책정된 신공항 건설이 대표적이다. 잼버리를 빌미로 인프라 예산 한몫 잡기에 더 열을 올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들이 견학을 이유로 99번이나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 또한 문제투성이다. 대다수가 잼버리와 관련없는 유명 관광지에서 시간을 때우고 일부는 크루즈 여행까지 즐긴 사실을 고려하면 새만금을 틈탄 나랏돈 빼먹기는 역대급 잔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잼버리 예산 1171억원 중 야영지 시설 조성에는 129억원만을 투입하고 조직위 운영비로 740억원을 쓴 사실이 ‘빼박’ 증거다.

새만금의 반성문은 앞으로도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행사 관계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 하나는 “그저 그런 적당주의로 성공을 기대했다면 그건 잼버리를 갖고 장난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RCO)에서 17년간 악장으로 일한 특급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뉴욕 필하모닉을 5년간 이끈 지휘자 얍 판 츠베덴(63·네덜란드)이 명연주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내놓는 답은 한결같다. “무대 위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90%의 실력을 발휘하려면 110%의 훈련이 필요하다.” 너무도 뻔한 팩트지만 연습, 그리고 또 연습 외에 무슨 비결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잔치가 절로 대박을 터뜨릴 것을 자신했다면 잼버리 관계자들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러워해야 할 답이다. 아시아 잼버리가 2년 후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고, 후보지 경쟁에 염치없이 또 나선 새만금과 강원도 고성이 신경전을 벌인다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징비’가 없다면 결과는 보나 마나다. K팝에 온세계가 열광하고 K푸드, K컬처가 젊은이들의 로망으로 각광받는다 해도 기본이 안 된 행사, 염불보다 잿밥에 눈독 들인 이들이 판치는 대회는 없느니만 못하다. 나라 망신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2023 새만금 징비록’을 반드시 남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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