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열의 물 이야기]예고된 홍수, 또 이상기후 탓만 할 텐가

  • 등록 2023-05-29 오전 6:10:00

    수정 2023-05-29 오전 6:10:00

[이중열 물복지연구소장] 엘니뇨가 온단다. 그것도 ‘슈퍼 엘니뇨’이고 ‘역대급’이란다. ‘역대급’이 공포스러운 의미의 수식어지만 우리 국민은 “그러려니” 한다. 그저 ‘예년보다 조금 더 덥고 비도 많아 올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통상 평년 대비 1.5℃ 이상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강한 엘니뇨’라고 부른다. 그리고 2℃ 이상 높아지면 ‘슈퍼 엘니뇨’라고 부른다. 우리 기상청만 아니라 영국 기상청, 유럽의 유럽중기예보센터, 미국 나사(NASA)도 올여름 엘니뇨가 ‘강한 엘니뇨’ 나아가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요즘 기상 예측은 거의 정확하다.

올해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다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2015년 강력 엘니뇨로 전 세계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인도 남부에선 여름이 시작되기 5월에 낮 최고기온이 48℃까지 치솟았고, 2330여 명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 북부에선 7월 폭우로 3일동안 828mm의 비가 쏟아졌다. 이 폭우로 14명이 숨졌다.

우리나라에서 기상이변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이다. 예보대로라면 우리는 지독한 가뭄의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대형 홍수를 마주해야 한다. 전남 완도군 도서지역은 지난해 3월부터 1일 급수 4일 단수 등 제한급수를 했다. 지난 5월 3~7일 쏟아진 비 덕분에 겨우 단계적으로 제한급수를 해제했다. 1년 2개월 만이다. 그런데 1년여 넘게 극심한 가뭄 터널을 빠져나오니 이번엔 물난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짐은 지난 3월부터 있었다. 엘니뇨 영향으로 때 이른 온화한 날씨에 봄꽃이 평년보다 일주일 이상 빨리 피어 지역별 벚꽃축제가 취소되는 소동이 있었다. 엘니뇨가 본격 시작되면 우리나라는 7, 8월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는 많이 내리고 기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천, 댐, 저수지 등 수자원 시설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선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환경부가 홍수 예보 강화, 인프라 구축, 홍수 취약 지구 관리, 관계부처 위기대응회의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 홍수 방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하천을 정비하고 댐 치수 능력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확대해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더 이상 홍수나 가뭄을 이상기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직무 유기다. 극심한 가뭄 지역에 반드시 대홍수가 발생한다는 것은 불 보듯 명확한 루틴이다. 특히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자체별 배수 시스템 점검과 보수, 홍수 및 산사태 대비 등 대응책이 선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엘니뇨에 의한 이상기후 현상은 예측이 어려워 완전한 예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국가가 대응 전담반을 당장 구성 운영해 사전 조치를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현재 있는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부를 컨트롤타워로 해양수산부, 기상청, 홍수통제소, 농촌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전담반을 구성해 대응해야 한다. 이 전선의 최일선은 한국수자원공사다. 전국의 주요 댐과 하천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20년 8월 용담댐 하류 지역 수해 피해 당시 한국수자원공사가 댐 방류량 조절실패로 주민들의 홍수 피해가 가중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섬진강댐, 용담댐, 대청댐, 합천댐, 남강댐 하류 지역이 집중호우와 무리한 댐 방류로 피해액 3757억원, 수해민 8400여명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사령탑에 정작 물 전문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민낯이다.

물은 과학과 기술이 녹아들어야 다스릴 수 있다. 전문가가 서야 할 자리를 이념과 ‘내 편’, ‘내 식구’가 대신한다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인재(人災)는 한 번이면 족하다. 물 안보, 물 복지, 물산업 경쟁력 등 시급한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물을 잘 아는 물 전문가의 혁신적인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다. 모두들 이 같은 ‘나아갈 바’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정의 순간엔 ‘우리가 남이가?’가 앞서는 게 슬픈 우리 현실이다. 다가오는 여름이 무서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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