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나게 해주세요”…실종아동·부모 모두 하고픈 말

집 앞서 잃어버린 아들 49년째 찾는 부모
“너를 버린 게 아니야…엄마 잘못이야” 애통
부모 찾는 자식도…“사건 접수 거절당하기도”
“실종 아동, 관심 지속되길…더 많은 지원 필요”
  • 등록 2022-05-25 오후 5:00:01

    수정 2022-05-25 오후 5:00:01

[이데일리 김형환 이소현 기자] “미친 사람처럼 전국을 다녔어요.”

1973년 세 살배기 아들을 집 앞에서 잃어버리고 49년간 찾지 못한 전길자(75·여)씨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전씨의 시간은 아들을 잃어버린 그날에 멈춰 있다. 전씨의 기억 속 그날 정훈이는 빨간 티셔츠에 보라색 바지, 어두운 남색 조끼를 입고선 “10분만 앞에서 놀고 오자”고 떼를 썼다. 아이의 고집에 전씨는 집 앞 슈퍼에서 도넛을 사서 정훈이와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 주고 잠시 집으로 들어와 100일 된 정훈이의 동생을 돌봤다. 집 밖의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기에 젖을 물렸던 전씨는 15분 뒤 쯤 정훈이가 사라진 걸 알았다.

전길자(75)씨가 49년 전 잃어버린 아들 이정훈씨의 어렷을적 당시 모습과 성인이 된 현재 추정모습(자료=전길자씨 제공)
49년 동안 전씨와 남편은 전단을 만들고 TV에도 출연하는 등 정훈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100일 된 정훈이 동생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손에 맡겼다. 전씨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젖동냥해주지 않았다면 동생도 잘 자라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식을 잃은 충격에 한동안 미쳐 있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미친 듯이 아이를 찾는 동안 전씨에게 힘이 돼준 건 경찰들이었다. 전씨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담당 형사가 전화를 걸어와 여러 위로의 말도 해주고 식사도 함께했다”고 했다. 전씨는 서울경찰청으로 이관된 정훈이 실종사건의 수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장기 실종 아동 부모 모임이 있는데 8명 정도가 나이가 들고 병에 걸려 아이들을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며 “그분들은 가슴에 한을 품고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했다.

전씨처럼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부모도 있지만, 반대로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 경우도 있다. 작년 3월 말 우연히 자신이 입양됐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박현미(49·여)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씨는 경찰서에 찾아가 유전자 등록을 했고, 2~3차례의 최면 수사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신영식, 신영석 또는 신영욱일 것이란 단서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박씨는 수사관들도 실종아동이 부모를 찾는 일을 해본 경험이 없어 실종신고 접수를 거절당하거나 유전자 등록이 어려웠다고 했다. 자신이 최초로 발견된 포항의 한 경찰서에 방문한 박씨는 “한 경찰관이 실종 아동을 찾는 것은 접수할 수 있지만, 부모를 찾는 것은 접수가 안 된다고 거절하기도 했다”며 “실종사건 수사에서 제대로 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를 찾는 박현미(49)씨가 1975년 7월 8일 입양된 뒤 찍은 사진(사진=박현미씨 제공)
아이를 잃은 부모도, 부모를 찾는 아이도 정부가 실종사건 수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전씨는 “가정의 달이자 실종아동의 날이 있는 매년 5월에만 실종 아동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말고 경찰, 보건복지부 등이 나서 빠르게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도 “경찰이 실종 아동 관련한 매뉴얼을 더 상세하게 마련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으면 한다”고 바랐다.

잃어버린 아이, 부모를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을까. 전씨는 “아들 정훈이를 만나게 되면 너를 버린 게 아니라고, 엄마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나를 버린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묻고 싶다”며 “최대한 빨리 부모를 찾아서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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