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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강달러, 은행 실적·건전성에도 악영향
-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중동 지정학적 위기와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등 악재로 환율이 껑충 뛰면서 금융지주들도 실적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중동 정세, 미국 금리 전망 등에 따라 고환율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환율이 상승하면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은행 입장에선 부담이다.[이데일리 이미나 기자]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이 1분기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 환산 손실을 실적에 반영할 것으로 예상한다. 메리츠증권, DS투자증권 등 증권가에선 하나금융 628억~700억원, 기업은행이 420억~470억원 가량을 인식할 것으로 추정했다. 환차손은 일회성이지만 비이자이익을 감소시킨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분기 원·달러 환율이 전분기 대비 59원 가량 상승함에 따라 일부 은행들이 환차손을 인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16일 장중 1400원 선을 넘는 등 최근 급등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안전 자산인 달러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설 정도였다. 이후 진정되는 듯했지만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사실이 알려진 19일(1382.2원) 1380원대로 다시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2022년 미국발 고금리 충격 등 세 차례뿐으로 이번이 네 번째다. /연합뉴스중동 전면전 확전 공포에 달러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에 따라 유가와 달러가 추가 강세를 보인다면 1440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했다.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구두개입’ 했다. 지난 2022년 9월 15일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주요국 통화 중 우리나라 원화 약세폭이 가장 컸다.환율이 상승하면 은행들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외화 대출, 통화 파생 상품 등 외화 자산을 원화로 환산할 때 금액이 늘어나면서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외화 대출은 원화 대출에 비해 손실 가능성이 높은 ‘위험 자산’으로 취급된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란 BIS 기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것이다.실제로 2022년 3분기 환율 상승기엔 환율이 100원 오를 때 자본비율이 약 0.32%포인트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환율은 1400원 중반까지 올랐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지주의 총 자본비율은 15.83%, 보통주 자본비율은 12.9%로 전년 대비 올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환율 현상이 지속된다면 위험가중자산 규모와 신용 위험 등 건전성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도 최근 개최한 금융상황 점검 회의에서 국내 금융회사에 “외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외화자산·부채에 대한 포지션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 北포털사이트, 구글 ‘흉내’ 영어 검색 기능 추가
-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북한의 포털사이트 ‘광야’가 미국 구글의 홈페이지를 모방한듯한 개편을 통해 영어로 검색이 가능해졌다. 북한의 체제 선전을 위한 개편 작업으로 분석된다.광야 모바일 홈페이지 캡처16일 북한의 포털사이트 광야에 접속하면 홈페이지 중앙에 광야라는 한글 글씨와 로고, 가로로 길게 만들어진 검색창을 확인할 수 있다. 광야는 지난 2018년 개설된 북한 사이트로 류경프로그래밍센터가 운영하고 있다. 개편 전에는 36개 북한 관련 사이트 링크 정보만 제공해왔다.개편된 홈페이지의 구성을 보면 구글의 검색창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All), 기사(Article), 사진(Photo), 영상(Video), 오디오(Audio), 책(Book) 등으로 분류된 검색 카테고리도 구글과 유사하다.검색은 현재 영어로만 가능한데, 북한에는 영어로 된 자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김(Kim)’으로 검색을 해보면 총 145개의 검색 결과가 제공된다. 최신순으로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해 노동당 간부들을 초청해 가족에게 선물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1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이외 ‘윤(Yoon)’으로 검색하면 윤석열 대통령에 관한 조선중앙통신의 비판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날짜가 3월 26일 동일한 것으로 봐서는 영문 기사를 동일한 날짜에 업로드 했거나, 자료를 이날에 대규모로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된다.윤(Yoon)이라고 검색했을 떄 5개의 결과가 나온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한 조선중앙통신의 기사다.(사진=광양 홈페이지 캡처)검색창 하단에는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조선의소리·민주조선 등 북한 주요 매체들의 홈페이지 배너가 나열돼 있다. 배너를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된다. 이외 조선의출판물·조선관광·려명·김일성종합대학 등 당국이 운영하는 사이트들도 이곳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메인 화면 최하단에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연결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재는 대표 홈페이지로만 접속이 된다.이번 홈페이지 개편은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후에 대남 선전·선동 전략 차원의 변화로 해석된다. 북한은 한국의 민족성을 빼고 ‘교전 중인 별개의 국가’로 규정한 뒤 ‘우리민족끼리’, ‘아리랑메아리’ 등 대남 선전매체 사이트 운영을 중단했다.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연구자들이 가장 곤란을 겪는 게 디지털화가 돼 있지 않고 검색이 안되서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며 “북한이 영어로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선전적 목표가 100%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일각에서는 북한이 인터넷 사용 등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인터넷 사각지대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민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된 국가다.전영희 평화외교기획단장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북한인권 협의에 참석해 “북한은 인터넷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0.1% 미만으로 세계 최저 수준임을 우려한다”며 “북한과 외부 세계 사이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북한의 부당하고 과도한 통제 조치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동 리스크로 지수 하락 전망…저점 매수 기회"
-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이란과 이스라엘 간 긴장감이 고조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 이익이 증가하는 시기에 전쟁 이벤트 부각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며 지수는 하락할 것이지만, 이란과 미국의 초기 행동과 미국이 대선 년도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산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사진=NH투자증권)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란과 이스라엘 간 확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란의 드론 공습 형태와 바이든 대통령의 첫 성명과 미국이 대선 년도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강대국들이 가세하는 5차 중동전쟁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1970년대와 같은 원유 보이콧도 어려운 구도로 판단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10월 코스피 저점은 2277.99포인트였다. 당시 주식시장은 5차 중동전쟁 가능성과 함께 연준의 추가금리 인상 및 고금리 지속 우려가 이어졌다. 미국의 국채 발행량 증가 부담 등도 함께 반영됐다. 김 연구원은 △중동 불안 △연준 통화정책 △한국 기업실적 등 3가지 변수를 놓고 보면, 한 가지 변수가 불거진 시기의 저점이 주가순자산비율(PBR) 0.91배, 두 가지 변수가 불거진 시기의 저점이 PBR 0.87배 정도였다고 분석했다.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중동 리스크가 투심에 일시적으로 충격을 주는 이벤트로 생각하며, 이 경우 지지선은 PBR 0.91배로 판단된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이보다 더 리스크가 심화되는 경우는 중동 이슈가 물가에 큰 충격을 줌으로써 연준의 금리 인하 경로가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우”라며 “이는 2023년 10월의 코스피 저점이었던 PBR 0.87배를 적용해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다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고,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에 따른 달러 강세, 원화 약세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실적이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향 수출주에 추가적인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반도체, 자동차, 기계 업종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부연했다.
- 국민연금 개혁…소득보장 유지 Vs 인상 의견 '팽팽'
-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025년까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3배가량 폭증할 거다.” (재정안정측 김도형 명지대 경제학과 부교수)“젊었을 때 불평등과 빈곤이 나이 들어서까지 지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소득보장측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13일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 첫회가 재정안정학자와 소득보장학자의 팽팽한 대립 속에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수도권, 제주 시민대표 261명)과 부산(부산, 울산, 경남 81명), 광주(광주, 전남·북 42명), 대전(대전, 세종, 충남·북, 강원 58명), 대구(대구, 경북 58명) 등의 지역 방송국을 연결하는 다원생중계로 생방송 됐다. ◇ 보험료율 인상 재정안정화 더 미뤄선 안 돼국회 공론화위원회에 따르면 의제숙의단은 지난달 워크숍에서 7개 공론화 의제별 대안을 구체화했고 그중 핵심인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조정안을 두 개로 결정했다. △보험료율을 현재 소득의 9%에서 13%로 높이고 2028년 40%가 되는 소득대체율은 50%로 상향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다.두 안 중 어떤 안으로 결론이 나도 1998년 이후 26년간 변하지 않은 보험료율은 오르게 된다. 다만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효과는 둘 다 크지 않다. 지난해 복지부 재정계산에서는 현재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유지될 경우 기금이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예측됐는데, 첫 번째 안은 고갈 시점이 2062년으로 7년, 두 번째 안은 2063년으로 8년 늦춰지는 정도다.김도형 명지대 경제학부 부교수는 “2055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는데, 기금이 소진되고 나면 국민연금이 완전 부과식으로 전환된다”며 “모든 연금 지출을 보험료 수입만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으면 2055년부턴 약 3배 가량 폭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성세대는 보험료율 9%로 소득대체율 40%를 보장받는데, 자녀세대는 동일 소득대체율 40% 보장받기 위해 보험료율을 30% 또는 그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대 간 형평성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보험료율을 올리는 재정안정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득보장 측 “소득 대체율 인상 감당 충분” 노후 소득보장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소득 대체율을 높이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보험료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40.4%로 OECD 국가 중 1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멕시코(19.8%)보다 2배 이상 높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상당수가 노인이 되면 곤궁한 생활을 하게된다는 걸 의미한다”며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녀세대의 문제도,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노후 세대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가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적어도 학교에서 12년 공부하고 사회에서 30년 가까이 열심히 일했다면 취약계층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중산층은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소득대체율을 50% 높여도 GDP 대비 국민연금의 지출 비율이 7.7%에 불과하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대체율을 50%로 현행보다 10% 올리고 보험료율을 13%로 (현재보다) 4% 인상하는 안은 사실상 현행보다 적자 연금 구조를 악화시키는 안”이라며 “소득 대체율을 지금보다 10% 올리는데 보험료 50%가 필요하다. 그런데 보험료를 1%만 올리면서 소득 대체율을 10% 올린다고 하니까 적자 구조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방향과 역행하는 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두 가지 개혁안의 재정 효과를 보면 적립기금 고갈 연도가 2061년 2062년으로 (현재 전망의) 6~7년도밖에 연장을 못한다”며 “적자 폭도 소득 대체율 10% 인상 효과는 사실 40년 이후에 우리가 나타나기 때문에 기금 소진 이후 필요보험료율의 차이가 사실은 8%까지 난다. 그리고 누적 적자가 702조원 높아진다.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면 1970조원이 줄어드는 안이다. 두 안의 누적 적자가 2700조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소득보장측인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만약에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올리지 않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노인도 미래의 노인도 가난하게 사는 게 정해진 답이라면 미래의 자녀는 아무런 책임을 안 질까?”라며 “후세대를 위해서 해야 할 것은 그들이 부담하게 될 세금을 깎아주고 보험료를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우리가 지금 만들어 놓고 그 제도가 국가에서 운영할 수 있게끔 국가를 감시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날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토론회는 △14일 소득대체율과 연금보험료율 조정 등 모수개혁 △20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 등 구조개혁 △21일 종합 발표 등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등의 형태로 3번 더 열린다. 공론화위는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를 마친 다음 날인 오는 22일 오후 3시에 김상균 공론화위원장 주관으로 국회 소통관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포함한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주요 결과를 종합 브리핑할 예정이다. 이날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연금은 전국민이 이해당사자”라며 “시대적 과업인 연금개혁에 지혜와 뜻을 함께 모아달라. 국민여러분이 모아준 뜻을 심사숙고해 연금개혁안 임기내 입법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 [이우석의 식사(食史] 면과 파스타, 끊긴 듯 이어진 '누들로드'
- 매일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려는 끼니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치열히 살았던 인류의 식문화는 곧 우리의 역사가 되었고 삶의 방식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한 접시의 음식 속에 녹아든 인문학은 또 하루를 지탱할 에너지와 지식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식탁을 더욱 맛깔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식사(食史) 한 끼를 지면의 식탁 위에 차려보려 합니다. 눈으로 맛보고 머리로 씹어보는, 어쩌면 포만감이 오래도록 남을 식사의 시간입니다. <편집자주>[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 소장] 국수. 그저 곡물을 반죽해 길게 뽑은 음식이다. ‘뭣이 중한디’. 국수의 발명은 인류에게 큰 사건이다.담양 국수거리 진우네 집국수 비빔국수곡물을 그대로 먹던 것에서 몇 단계 진화했다. 곡물을 빻아서 반죽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머릿속으로 나중에 완성될 형태를 미리 상상하고 만들어야 한다.‘어! 이렇게 하면 가루가 되네?’그렇다. 알갱이 곡식을 제분하려면 맷돌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도 필요했다. 이렇게 빚은 국수를 익히기 위해선 화구(火具)도 필요했고 혹여 삶기라도 하려면 물이 새지 않는 질그릇도 만들어 내야 했다.국수를 만들어 먹게 된 것은 그만큼 인류의 두뇌와 손기술이 첨예하게 발달했다는 방증이다.담양 국수거리 진우네 집국수◇동양은 면, 서양은 파스타 국수의 시작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국수의 유적은 중앙아시아(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부근)에서 발견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북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어쨌든 국수는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애초 누들로드란 따로 없었다. 어디서 어디로 일방적으로 전래된 것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동양의 면(麵)과 서양의 파스타가 얼추 비슷한 시기에 발달했다. 마르코폴로가 문익점처럼 중국에서 비법을 가져간 것이 아니란 얘기. 동방견문록보다 적어도 2000여 년 앞선 고대 로마의 문헌에도 국수가 언급된다.다만 근대까지 국수를 상식하는 지역은 주로 아시아에 편중되었고 유럽에는 이탈리아 파스타와 독일 남부 슈페츨레(Spatzle)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었을 뿐이다.우리나라에는 서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아쉽게도 국수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최초로 국수가 등장한 문헌은 고려도경(1124년). 북송의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오며 풍습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는데 ‘고려의 음식 중엔 면(국수)이 으뜸’이라고 남겼다. 사신을 접대할 때 내왔을 정도로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국수는 얼핏 한자어 같지만 순우리말이다. 주로 국물에 말아 먹는 습면(濕麵) 방식이며 비벼 먹는 비빔면(골동면)은 훗날 등장한다.당시엔 지리적 기후적 여건 탓에 밀이 굉장히 귀한 재료라 주로 메밀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잘 뭉쳐지지 않는 메밀에 소량의 밀가루나 녹두 전분을 첨가해 제면했을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정말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다.길쭉하니 국수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제면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비벼서 만드는 것이 가장 원초적이다. 1991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르판 화염산에서 발견된 최초의 국수 유물은 딱 보기에도 짧고도 굵다. 거의 떡볶이 두께에 가까운 이 국수는 반죽을 양 손바닥으로 문질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같은 지역에서 먹고 있는 국수 요리 라그만(lagman)과 닮았다.따지자면 납면(拉麵) 방식에 가깝다. 일일이 손으로 비벼서 만들다 아예 반죽을 늘여가며 뽑는 기술이 생겨나 요즘은 수타면(手打麵)이라 한다.국수가 세계를 휘휘 감고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국수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파스타◇납면, 압출면, 절면 등 다양한 제면법 발전해 중국의 국수 제면법은 다양한 것이 있지만 납면이 기본이다. 진나라(5~6세기) 때 나온 농서 제민요술(濟民妖術)에 최초의 국수 제면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손으로 눌러 얇게 만든 수인병(水引餠)이 바로 납면 방식임을 알 수 있다.오랜 경험과 학습 과정을 거쳐 밀가루를 기하급수로 늘여 만드는 현대식 수타면은 중국 국수의 상징이 됐다. 반죽에 알칼리수를 더하면 점도와 탄성이 증가하는 원리도 응용할 줄 알았다. 중국 면 요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데에는 ‘수타’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한몫했다. 참고로 납면은 라면의 어원이 됐지만 실제 라면의 제면법은 납면과는 크게 다르다.우리나라의 국수 제면법은 압출면(押出麵)이다. 반죽을 눌러 작은 구멍으로 빼는 방식이다. 반죽이 좀처럼 뭉쳐지지 않는 메밀이 국수의 주재료였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로 한 ‘익반죽’을 분틀에 넣고 지렛대로 뽑아내는 방식을 주로 썼다. 냉면과 막국수가 바로 압출면이다.압출면, 또는 압면(押麵) 방식이라 불리는 이 제법은 상당히 강한 힘으로 눌러야 국수가 나오기에 장정이 분틀 손잡이에 거꾸로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그림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부산 내호냉면의 냉면지금의 칼국수 제면법인 절면(切麵)도 있었다. 반죽을 얇고 넓게 편 다음 칼이나 작두로 써는 방식이다. 1766년(영조 42년)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에는 메밀 반죽을 얇게 밀어서 실처럼 썬다고 적어뒀다. 똑같이 칼을 쓰지만 어깨에 반죽을 올리고 얇게 깎아내는 중국식 도삭면(刀削麵)과는 또 다른 방식이다.일본 역시 칼로 써는 절면을 쓴다. 워낙 남북의 위도 차이가 나고 기후가 서로 다른 까닭에 간토(관동)과 간사이(관서)의 국수 재료가 메밀(소바)과 밀(우동) 등으로 분명한 차이가 난다.밀가루 우동을 즐기는 간사이 지방 쪽에선 반죽을 버선발로 밟아 반죽해 점도를 높인 후 작두로 잘라 우동을 만든다.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현의 제면 방식이다.간토 지방의 소바는 우리 냉면처럼 메밀로 만들지만 제면법은 역시 가늘게 써는 것이다.베트남의 쌀국수 포(pho) 역시 쌀가루를 반죽해 얇고 넓게 누른 다음 칼로 썰어내는 절면 방식이다. 밀이 나지 않는 기후라 쌀로 만들었을 뿐이다.한편 이탈리아 파스타의 제면법은 늘이고 뽑고 손으로 빚어 만드는 등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은 물로 반죽한 듀럼밀을 압출해서 뽑는 방식이다. 서양의 ‘국수 종주국’답게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다.롱 파스타에는 스파게티, 가느다란 카펠리니, 눌린 타원 단면의 링귀네, 두껍고 넓은 페투치네, 칼국수처럼 납작한 탈리아텔레, 튜브 모양의 부카티니, 우동 가락같은 비골리 등이 있다.쇼트 파스타는 더 다양하다. 펜촉 모양 펜네, 짧은 튜브 마카로니, 난로 연통 리가토니, 나비넥타이 파르팔레, 소라 모양 콘킬리에, 스크루 모양 로티니와 푸실리, 마차 바퀴같은 루오타, 달팽이를 닮은 루마케, 사람 귀 모양 오레키에테 등 수도 없다. 하지만 쇼트 파스타는 우리로선 수제비 개념이다. 일반적인 ‘국수’의 개념으로 한정할 때는 롱 파스타에만 수긍이 간다.가이오국수 얼큰 부추국수◇‘밥보다 국수’, 면을 사랑한 한국국수는 우리에게 어떤 음식일까?“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시인 백석은 그의 시 ‘국수’에서 국수(그중에서도 냉면)를 ‘그 무슨 반가운 것’이라 칭송했다.또 ‘스님이 웃는다’는 뜻의 승소(僧笑)는 불교에서 국수를 뜻하는 말이다. 공양을 위해 국수를 준비하면 반가움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수는 마니아층이 많은 음식이었다.요즘도 ‘밥보다 국수’라며 한국인 중에 유독 국수 좋아하는 이가 많다. ‘면(麵)성애자’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실제로도 그렇다. 쌀 소비는 꾸준히 감소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58㎏(이하 2020년 기준)였다. 반대로 밀 소비량은 지속해서 늘어 약 31㎏을 차지해 제2의 주곡 자리까지 올랐다.물론 밀 소비량 중엔 국수뿐 아니라 빵과 떡의 수요도 있다(물론 국수 중에도 메밀과 고구마 전분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직 밥을 대신했다는 말엔 무리가 있지만 분명히 국수는 밥과는 다른 입맛의 매력을 품고 있다.밀은 귀했다. 권세가가 많았던 안동의 국수가 유명하듯 예전에는 양반가에서나 먹을 수 있던 귀한 음식이 밀국수였지만 지금은 저렴한 대중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초 도입된 소면 공장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산 원조 밀가루가 대량으로 풀린 것이 국수 대중화에 큰 공을 세웠다.보관도 조리도 편한 까닭에 단숨에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소면’은 식탁의 혁명이었다. 육수만 내면 언제든 간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소면(素麵)은 작을 소(小)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름처럼 그저 하얀색 국수란 뜻이다. 흰옷을 뜻하는 소복(素服)의 소 자를 쓴다.일제강점기 한반도 곳곳에 소면 공장이 생겨났다. 기계를 썼지만 제면 원리는 재래식 납면 방식이었다. 베틀처럼 생긴 제면기에서 막대로 반죽을 실처럼 가늘고 기다랗게 늘인다.가내 수공업 형식에서 제면 기계를 들여오며 국수 공장은 현대 식품산업의 기수가 됐다. 1933년 대구에서 풍국면이 나왔고 소표, 곰표 등 국수 브랜드가 쏟아졌다. 이 무렵 창업한 삼성도 1938년 대구 북성로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며 사업을 확장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름은 별표 국수였다.인스턴트 라면이 나오기 전까지 국수는 최고의 패스트푸드로 각광받았다.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값싸고, 빨리해 먹을 수 있고, 든든한 메뉴가 국수였다.담양 국수거리◇혼분식 장려운동, 국수의 지위를 올려 “참기름도 치소”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1957년)에서도 일제에 징용됐다가 팔 한쪽을 잃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다리 하나를 잘린 채 돌아온 아들을 만나 국수를 사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국수가 밥의 지위(주식)를 노리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혼분식 장려운동이다. 1969년 제3공화국 정부가 밥(쌀)을 절약하기 위해 실시한 혼분식 장려운동은 과거 특별하던 날에만 먹던 국수(소면)를 거의 모든 식당 메뉴에 들어가게 한 식단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수요일과 토요일 무미일(無米日)을 두고 절미운동(節米運動)을 벌였다. 이때 국수와 수제비가 활약했다. 설렁탕, 곰탕에도 국수를 말아 냈다. 추어탕에도 국수가 들어갔다. 이런 흔적은 지금도 이어져 90여년 전통의 용금옥(1932년 개업)에서 추탕에 말아 먹는 국수사리를 따로 내주고 있다.이후 국수는 증식(增食) 수단의 역할을 벗어던졌지만 이미 ‘후루룩’의 매력에 빠져버린 국민의 입맛은 여전히 국수를 찾게 됐다.더 이상 잔칫날이나 먹는 귀한 음식은 아니지만 행사에서 국수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하다.선남선녀가 만나 가약을 맺을 때면 마땅히 잔치를 열고 국수를 나눈다. 길게 사랑하고, 오래 살란 뜻이다. 환갑이나 고희연에는 기다란 모양새처럼 오랫동안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 국수를 먹는다.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서 시작해 전 세계를 두루 감싸고 있는 국숫발의 매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그 가락처럼 기나긴 세월 동안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 그릇의 국수.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쪼록’ 빨아들이면, 비로소 춤을 추는 국숫발이 노란 봄날의 아지랑이를 살짝 닮은 듯하다.혼분식 장려운동의 잔재가 여전하다. 용금옥 추탕에 들어가는 국수사리.◇ 국수 맛집▶얼큰 부추국수 = 가이오국수. 커다란 그릇에 부추무침과 김가루를 수북이 얹어 준다. 잘 헤쳐야 비로소 국수가 보인다. 겉절이 부추와 국수를 한 번에 오물오물 씹으면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식감의 대비가 좋다. 이름과는 달리 국물은 그리 맵지 않다. 식으면 맛이 덜하다고 뜨거운 국물을 계속 채워준다.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도 맛이 잘 들었다. 서울 은평구 연서로 132.▶진우네 집국수 = 담양에는 국수거리가 있다. 관방제림 옆으로 천변 국숫집들이 늘어섰다. 초입에 있는 이 집은 시원한 전라남도 특유의 진하고 시원한 멸칫국물이 특징이다. 얼추 우동 가락의 절반 정도 되는 굵은 면을 쓴다. 한입 집어도 입안 가득 포만감이 느껴진다. 고명으론 고춧가루와 대파만 얹었는데도 뭔가 모자람이 없다. 2알에 1000원 받는 계란도 필수 메뉴라 한 알은 까먹고 나머지는 국수에 넣으면 든든하다.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32.▶봉골레 파스타 = 라칸티나. 1967년 개업한 국내 최고(最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다양한 ‘양국수’(파스타)를 판다. 봄 조개라니 봉골레가 좋다. ‘스파게티 콘레 봉골레’는 백합을 넣고 국물 흥건하게 끓여낸 독특한 스타일이다. 올리브 오일과 화이트 와인을 넣고 끓여낸 국물에 시원한 감칠맛이 들었다. 알덴테로 삶아낸 면발과도 퍽 어울린다. 서울 중구 을지로 19. 부산 내호냉면의 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