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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굵고 거칠고 빠르게 내려그은 붓자국. 푸른색과 초록색이 화면 가득 어수선하게 엉켜 있다. 그렇다고 형체가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갑자기 어둠 속에 들어섰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렇다면 뭐가 보이는가. 병이다. 어렴풋이 액체를 흘리고 있는 누운 술병이 보인다. 그리고 꽃이다. 만개하다 못해 다 퍼져버린 꽃잎과 꽃가지가 눈에 들어오는 거다.
그 도구가 ‘식물’이란다. 꽃이든 풀이든, 결코 주인공으로는 나서지 못하고 그저 주변에 ‘잘 어울리는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예쁜 존재감. 정치성·사회성 따위는 감히 드러낼 수도 없는. ‘새벽 칵테일’(2019)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식물’. 뭔가 급박했을 저 상황을 지켜본 이는 저들뿐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