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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선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 대표의 사천 논란이 불붙었다. 그와 가까운 인사들이 당선권에 다수 포진했고, 김 전 대표도 남성 후보로는 가장 앞번호인 2번을 받아 ‘셀프공천’ 비판이 제기됐다. 비대위원들은 공천을 둘러싼 혼란에 책임을 진다며 일괄사의를 표명하는 일도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선 상향식 공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유민봉 전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처럼 ‘진박(진실한 박근혜 사람)’이 포함됐다. 현재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진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당선자 13명 중 9명이 안철수 전 대표와 연이 있었다. 당은 안 전 대표의 핵심측근이었던 이태규 당 전략홍보본부장의 공천을 위해 ‘공천관리위원 공천 배제’ 당규도 고쳐 비난을 샀다.
각 당마다 당헌당규를 통해 비례대표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후보자검증위원회, 최고위원회 등을 거치는 공천절차를 두고 있지만, 요식행위에 그칠 뿐 사천 앞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정당득표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되는 전체의석을 정한 후,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의 순으로 당선인을 결정한다. 단,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중복입후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도 비례대표로 구제될 수 있다.
독일식이 각광받는 데엔 비례성 구현과 함께 과정상의 투명성도 한몫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독일은 정당마다 비례대표 선출 과정을 전부 녹취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과정 공개를 의무화해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는 당 내부에서 당원들로부터 검증을 받고, 후엔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해 공정성·투명성 담보의 이중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문제성 인사’를 비례대표 후보군에 끼워넣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사천’을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있단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폐쇄형 명부제’ 아닌 ‘개방형 명부제’를 채택하는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나라도 있다. 폐쇄형은 유권자가 정당명부의 후보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어 후보공천의 공정성·투명성 결여시 정당불신을 낳을 수 있단 단점이 있다. 하지만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 및 다양한 직능대표자를 정당이 인위적 배정으로 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반면 개방형 명부제는 명부 후보 중 유권자의 직접투표를 가장 많이 얻은 후보 순으로 당선인이 결정된다. 지도부 아닌 유권자의 뜻이 보다 반영되지만, 자칫 ‘인기투표’로 흐를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