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개혁, 국가대표 기업이라도 살려야[이근면의 사람이야기]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 등록 2025-01-03 오전 5:00:00

    수정 2025-01-03 오전 5:0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정치 환경이 극도로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행정 권력은 사실상 마비됐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고 권한대행은 내란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 또다시 정치적으로 탄핵해 경제부총리가 대행의 대행이란 초유의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대행이지만 언제든지 또 탄핵으로 직무정지될 수 있으니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적이다. 아마 민주당에선 원하는 대로 행정부를 운영할 때까지 탄핵을 정치적 무기이자 행정부 붕괴 도구로 쓸 수도 있다. 그사이 국정이 멈추고 민초와 민생, 기업, 경제와 외교가 심대한 피해를 당해 대한민국이 올스톱하는 악몽 같은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믿고 따르던 국가의 엘리트라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벌인 소극이 이제 비극으로 점철하는 중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있어서는 안 될 이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겠지만 그 여파는 국가의 처연한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탄핵을 행정부 붕괴의 단초로 활용한 정치권력의 시도는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이것이 삼권 분립에서 허용된 행정부의 손발을 묶는 방안으로 입법부에 주어진 권한 내라면 견제와 균형과 독립적 삼권 분립이란 헌법 정신의 맹점이 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에 도달하게 된다. 즉, 입법 권력이 실질적 국가 통치권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심사숙고해야 할 법률상의 문제고 과연 민주주의의 본질이 맞는지도 짚어봐야 할 난제다. 이와 더불어 민생과 민초, 다음 세대를 위한 행진도 이제 잠시 아니 오랫동안 멈춰 서게 됐다.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은 채….

대통령이 높이 들어 올렸던 4대 개혁의 기치는 땅에 떨어졌다. 다음 세대에게 미칠 후폭풍은 갈수록 커가는데 개혁이라는 차를 몰던 대통령이 어이없는 급발진을 하는 바람에 국민으로부터 아예 차 키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싣고 있던 짐을 운반해야 하는데 앞길을 서두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연금, 의료, 교육, 노동 분야 과제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함께 멈춰버렸고 아마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제 누가 시대적 소명과 다음 세대와 청년들을 위한 인기 없는 개혁에 앞장서겠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은 일상 업무를 소극적으로 해내기도 벅찰 것이고 다음에 누가 집권하든 윤석열표 개혁 과제는 철저히 외면받을 것이 자명하다.

이 시국에 어느 누가 필수의료 분야 재건과 의료재정 건전성 확보 같은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겠으며 노조에 돌 맞아가며 주 52 시간제의 탄력적 적용이나 노조 불법행위 근절과 새로운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신노동법을 외칠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미래 ‘국민 100세 시대’인 아이들 세대의 개인 생존 생활 능력과 국가경쟁력을 담보할 인재 교육개혁은 발차도 못하고 물거품이 되고 재정 안전성을 고려해 거부했던 국민연금 개혁안은 다음 정권에서 청년 세대에게 더 크게 부담이 가는, 눈앞만 바라보는 개악의 방향으로 바뀔지 모르고 직역별 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거대 과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개혁의 성공이란 모름지기 첫째, 목표가 확실하며 과정이 뚜렷해야 하고 둘째, 사회적 기득권의 양보와 관련 집단의 고통분담이 필수적이며 셋째, 충분한 협의와 신속한 결정이 수반돼야 한다. 이제 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날 경우를 준비해야 한다. 구호가 아닌 개혁의 내용과 구체적 기본 목표를 다시 한 번 가다듬고 사회단체의 합심한 시대적 소명에 대한 책임 의식이 발휘돼야 한다. 풍랑에 휩쓸려 가는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책임이며 모두의 결정이다. 또 하나의 대비는 최소한의 보험이라도 차선책으로 들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미래의 안정과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장기 과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단기 과제에라도 집중해야 한다. 대외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1기 때보다 더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무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한다. 트럼프의 충동적 정책에 제동을 걸었던 1기 내각의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모조리 쫓겨났고 그 자리를 개인적 인연과 충성심으로 무장한 측근들이 채웠다. 아마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서는 혹독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이 한층 격화해 그 여파가 우리의 수출길을 좁히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게 세간의 중론이다.

차선은 기업이 각개 전투식으로 돌파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가 안팎의 구조적 변화에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할 길이 막혔고 단기 과제에도 기민한 대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기업이라도 뛸 수 있게 밀어줘야 한다. 기업이 자신들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 미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합종연횡을 통해 다가올 변혁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업이 각자도생식으로 살길을 찾는 것은 늙고 병들어 가는 대한민국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것에 불과하다. 4대 개혁이 병든 부위를 도려내고 기초체력을 키우는 길이었지만 이제 그 길은 닫혔다. 그러나 산소호흡기라도 달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번영과 안정은 곧 꺼질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상황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상황이 급하다. 기업이 연구개발, 인재 확보, 해외시장 개척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무제한으로 늘리고 불필요한 노사분규와 오너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이 각별한 배려를 해줘야 할 때다. 정치의 권력 잡기보다 시급한 민생 현안이다. 정파를 넘어 당분간이라도 멀리 보는 범국가적 공생 작전의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한다. 국가 생존 태스크포스(TF)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모두 두 눈 꼭 부릅뜨고 생존의 안전띠를 꽉 붙들어 맬 때다. 그 길의 맨 앞에 세계에 도전하는 국가대표 기업이 뛰게 해야 한다. 우리의 일자리다.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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