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시장친화적인 면모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금융사들이 당국에 바라왔던 굵직한 요구사항들을 수용, 규제보다 지원에 무게 둔 금융감독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업계의 환영 속에 일각에선 ‘금융소비자 보호’를 놓쳐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존폐 엇갈린 종합검사, 이번엔 폐지 수순
|
그는 지난 8월 취임 후 처음 마련된 이날 간담회에서 지주사 회장들에 ‘선물보따리’를 풀어놨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종합검사를 중심으로 한 현행 검사 체계 개편 약속이다. 사후적 적발·처벌보다 사전적 예방에 방점을 두고, 종합·부문검사로 구분하기보단 유연하고 효율적인 운용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종합검사 폐지 수순으로 해석된다. 이달 중순으로 예고됐던 우리금융지주 종합검사를 유보키로 한 데에도 정 원장의 이 같은 뜻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정 원장은 현재 내부 가동 중인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 중인 검사·제재 관련 제도개선 방안을 가능한 연내에 결론짓겠단 방침이다.
업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나중에 구체적인 제도개선 발표를 봐야겠지만 종합검사를 통한 사후적인 지적이나 처벌보다 사전적인 컨설팅을 해준다면 감독당국이나 금융사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기울어진 운동장’ 정보공유도 푼다…“소비자 배려도 필요”
지주사 내 고객정보 공유확대 약속도 지주사들의 숙원을 풀어준 격이다. 정 원장은 “은행법의 적극적 해석 등을 통해 고객의 동의가 있는 경우 영업 목적을 위한 지주그룹 내 고객정보 공유에 제한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지주사들은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고객정보 제공 동의 없인 영업 및 마케팅 목적의 자회사 간 정보 공유가 불가능한데 이를 은행법상 최대한으로 허용하겠단 뜻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고객 동의를 받아 다른 자회사에 정보공유를 하려면 수수료 문제가 생긴다”며 “수수료가 개입되면 이를 은행의 ‘부수업무’로 규정하든 업무가 아니라고 해석하든 해석이 필요해 이를 명확히 하겠단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정 원장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산정기준을 완화해 금융사들의 짐을 덜어주고,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실시 주기도 1년에서 3년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모두발언에서 ‘지원’이란 단어만 6차례 입에 올렸듯, 지주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아낌없는 뒷받침을 거듭 약속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 원장의 이러한 ‘친시장’ 행보에 금융소비자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단 우려도 보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옥죄기를 계속한 금융권을 달래기 위한 선물들 같다”며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은행, 금융지주사에 대한 지원책만 보이고 금융소비자에 대한 배려 목소리는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