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취향이다. 모든 사람이 전기차 테슬라에 혹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기꺼이 공감하는 범주는 있다. 럭셔리 혹은 명품이란 거다. 그런데 더 이상 클래식하지만은 않다. 명품도 진화한다.
1911년 프랑스 패션디자이너 폴 푸아레가 ‘로진’이란 향수를 출시했다. 첫 딸의 이름을 붙였다. 향수의 대명사 격인 ‘샤넬 넘버5’가 만들어진 건 10년 뒤인 1921년. 이 향수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전환기에 바뀐 패션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부유층 여성을 대상으로 고가의 드레스를 내놓던 이들이 수입극대화를 위해 시장의 다각화를 꾀한 조짐이기 때문. 이때를 기점으로 날렵하고 맵시있게 ‘잘빠진’ 향수병은 명품 브랜드의 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프리즘이 됐다. 1970년 무렵이 되자 명품은 향수병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라이터·펜·시계·열쇠고리 등등 별스런 아이템들이 프리미엄 가치를 뿜어내며 대중을 유혹하기 시작한 거다.
선별적이고 배타적이며 희귀하고 세련됐다. ‘고급 취향에 맞춰져 그저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 카테고리 안에서 거의 유일한 브랜드.’ 모던보다는 올드하고 듬직하지만 고지식한 그 브랜드가 여전히 상류층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이유는 뭔가.
▲“명품은 필수품이다”
명품은 고가에 걸맞은 품질을 추구하는 명실상부한 브랜드다. “예전에는 특별한 사람의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일상 가운데 특별함이 됐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이 틀에 맞춰, 명품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를 봤다. 삶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란 의미다. 명품을 탐하는 게 단순히 좋은 물건에 대한 욕심은 아니다. 품질과 가치라는 확실한 보증이 뒷받침될 때 물건은 인생의 풍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구두·패션·보석·시계 등 일찌감치 구획된 품목은 물론 매장·요리·지식경제·디지털까지 명품의 개념을 확장한다.
하지만 이쯤되자 명품 브랜드의 대중화에 대한 자성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거물들이 명품만의 특별함을 내다버렸다는 탄식이다. 그래서 명품이 단지 ‘거품이 잔뜩 낀 가격’과 동의어가 됐다는 거다. 이 움직임은 여론과 매체가 부풀린 대중적 명품의 열풍을 꺼뜨리기 위한 노력과 맞물렸다. 명품 브랜드를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자는 ‘의식’이다.
▲명품, 그 화려함의 이면
성공한 브랜드가 공통으로 자랑하는 것이 있다. 위대한 스토리다. 특히 명품업계에는 빈털터리에서 부자가 된 전설이 가득하다. 책이 세세히 들여다본 부분도 이것이다. 명품이란 단어에 함축된 ‘장인정신’도 거역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부터 프랑스에서 도제생활을 했다는 구두장인 피에르 코르테도 그중 한 명. 그의 맞춤구두가 완성되는 데는 대략 다섯 달, 50~60시간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그의 구두는 20년이 너끈하다.” 3000~7000유로(약 440만∼1000만원)의 가치는 그렇게 환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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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럭셔리가 명품
저자는 명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다졌다. ‘가치’다. 진정한 가치는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란 데 방점을 찍었다. 겉보기만 화려한 거품 브랜드와 명품은 구분돼야 한다. 이를 좌우하는 건 철학. 정신이 빠져버린 브랜드는 그저 비싼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명품에 대한 무조건적 찬사는 배제했다. 럭셔리에 묻어 있는 부정적인 울림도 애써 제거하진 않았다. “명품은 돈으로 측정할 수 없다.” 가격이 비싸단 의미가 아니다. 가치가 비싸단 얘기다.
다만 지속가능한 럭셔리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말은 어떤가. “샴페인이란 이름이 오늘날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됐다면 그건 그 이름이 존중받도록 그만큼 애쓴 덕분이다.” 한마디로 ‘좋은 재료를 써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잘 만들고 그 결과물을 음미하는 것’이 명품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치를 못 캐낸다면 명품에 그토록 목맬 자격이 없다는 의미로 충분히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