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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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조용석 기자] 1938년생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은 원로 정치인이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60년,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린 4.19혁명을 주도했다. 이때 박 전 의장을 눈여겨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부산4선거구에 출마, 당선되며 국회에 첫 입성했다.
그후 1990년 김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기 전까지 꾸준히 야당에 몸 담으며 각종 투쟁의 현장에서 선봉에 섰다. 그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본인 스스로에 대해 “평생 타고난 업보가 있는 것 같다. 평생 밖에서 고함지르고 싸우고 그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는다”며 “이 나이에 광화문 집회에 나간 것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경고하기 위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의장은 최근 ‘조국 사태’로 열린 보수층의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4선 의원이던 1993년 김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김영삼 청와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다. 이때 이뤄진 게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시행이다. 그는 이때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을 경험했다. 박 전 의장은 “리더는 용기와 능력,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지금 우리 정치권에는 이런 리더십을 갖춘 리더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회의장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6대 국회에서 당선되며 6선 의원이 된 그는 2002년 16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됐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는 의사봉을 두드린 국회의장이 됐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노 전 대통령은 나하고 같은 부산출신으로 평소 잘 아는 후배였다. 그런데 내 손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며 “탄핵 당시 며칠 고민을 했는데 결국 ‘내 운명이다’란 생각으로 방망이(의사봉)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국회의장에서 물러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해 국회의장을 한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관행을 만든 장본인이 됐다.
박 전 의장은 정계은퇴 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2월에 열린 한국당 당대표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관리했다.